[시론/이석원]후보들 공약 평가는 언론의 의무

  • 입력 2006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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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닌 ‘이미지’ 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수도 서울의 시장을 뽑는 일이 ‘보라색’ 대 ‘녹색’의 대결 양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그뿐 아니다.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당은 젊은 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꼭짓점 댄스를 배우고 선거운동원들의 유니폼을 공모전까지 열어 디자인하고 있다고 한다. 가히 선거가 이미지 대결구도로 치닫는 양상이다.

이미지를 정치에 이용하는 일이 이번 선거에서만 있는 일은 아닐 뿐 아니라 정치학에서는 오랫동안 연구되어 온 주제이기도 하다. 정치에 활용되는 이미지는 유권자에게 자신이 쌓아온 특정한 경험을 연상하게 해 유권자를 끌어들인다. 이러한 기능은 이미지의 ‘감성적 성질’과 ‘종교적 신성함’에서 비롯된다.

이미지의 감성적 성질은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여 대규모 군중을 끌어들인다. 종교적 신성함은 우리 ‘구역’과 이교도의 ‘구역’을 분리하여 마치 적군과 대치한 군대와도 같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기능이 있다.

이러한 이미지의 기능은 선거 때마다 놀라운 힘을 발휘하곤 한다. 이 때문에 인도에서는 해마다 선거철이 되면 각 정당이 선거에 동원할 코끼리, 화살, 사자 등 종교적 의미를 가지는 상징들을 사용할 권리를 선관위가 직접 나서서 배분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미지 정치가 불러오는 폐해이다. 이미지가 호소하는 감성은 유권자의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며, 이미지가 몰고 가는 광적인 유대감은 가뜩이나 갈등이 심한 우리 사회의 편 가르기를 더욱 부채질할 수 있다. 아마도 나치 독일의 국가사회주의노동당(NSDAP)이 1920년에 채택한 스바스티카(Swastika·꺾인 십자) 심벌은 이미지 정치가 가져올 수 있는 폐해를 보여 주는 극명한 예가 될 것이다.

감성에 취해 편 가르기를 하면서 국가의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다. 후보자가 변해야겠지만 유권자가 먼저 변해야만 한다. 정치인은 원래 선거에서 표를 획득하는 것을 제1의 목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유권자가 이미지 정치에 반응하여 표를 던지면 이를 적극 활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시장의 논리이다.

그렇다면 유권자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정책과 공약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 후보자를 평가해야 한다. 후보자가 내세우는 공약은 당선을 조건으로 유권자와 맺는 일종의 계약이다. 유권자는 계약조건을 이성적 기준으로 검토하여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표를 던져야 한다. 당선된 후에도 임기 내에 과연 계약을 충실히 실천하는지 예의주시하면서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여야 한다.

이는 공약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여 유권자의 유불리를 따지는 정도로 간단하게 끝날 일은 아니다. 13세기 영국에서 현대적 의미의 선거가 시작된 이래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공약이 100% 지켜지는 일은 매우 드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선거 공약은 후보자가 가장 이상적인 경제적, 재정적, 정치적 상황을 가정하고 만들어 낸 장밋빛 청사진이다. 반면 실제 공약의 실천은 가장 불리한 상황을 상정하고 집행하여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두 가지 극단적 상황이 일치하는 일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유권자가 공약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감세, 사회복지 프로그램 확충, 균형예산 유지’라는 절대로 양립하기 어려운 세 가지 과제를 공약으로 들고 나온 2000년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후보나 2003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 자유당처럼 유권자를 ‘속이려는’ 후보자를 뽑는 일이 발생한다. 이런 일은 5·31지방선거에서 우리에게도 일어날 확률이 높다.

이는 선거시장에 존재하는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유권자가 후보자의 공약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언론일 것이다. 상품시장에서 발생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은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지만 선거시장에서는 그 역할이 언론에 주어져 있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판단기준에 의해 후보자들의 공약을 냉철히 분석하여 유권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국가미래를 결정하는 선거시장에서의 언론의 사명이다. 이런 의미에서 동아일보의 파인(FINE) 기법 분석(11일자 A1·6면 보도) 등 언론이 공약평가에 적극 나서는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석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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