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혜준]뉴스 서비스 확대하는 포털 사회적 책임 요구 외면 말길

  • 입력 2006년 4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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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입구’라는 뜻의 포털(portal)이란 말은 대학 시절 ‘vocabulary 22000’이라는 영어 단어집에서 보았던 비교적 고난도의 단어였다. 하지만 근래에는 웬만한 초등학생도 쓰는 말이 돼 버려 급변하는 세상을 실감하게 된다.

오늘날 인터넷 세상은 포털을 통해 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는 정보를 찾아가는 관문이다. 즉 정보의 바다에서 무슨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안내해 주는 일종의 ‘전화번호부(directory)’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다가 e메일, 인터넷게임, 뉴스 등과 같은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엄청난 규모의 회원을 확보한 대형 포털이 나타났는데 바로 네이버, 다음, 야후, 엠파스, 파란, 네이트 등이다.

이들 포털은 이제는 국민 2명 중 1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을 정도로 급성장했는데, 이는 포털에서 검색, 뉴스, e메일, 커뮤니티, 게임 등의 인터넷 부가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체 누리꾼의 90% 이상이 포털을 통하여 뉴스를 볼 정도로 포털의 뉴스 서비스는 인기가 높다. 심층보도나 탐사보도, 깊이 있는 해설과 논평은 여전히 신문의 영역이지만 속보만큼은 포털을 통해 다양한 매체의 뉴스를 공짜로 빠르게 골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뉴스 서비스와 관련해 포털은 뉴스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된 뉴스를 유통시킬 뿐이다(‘미디어다음’은 제외). 하지만 이제 단순 유통에 그치지 않고 여론을 직접 주도하게 되었다. 즉 ‘어느 매체의 기사를, 어떤 위치에, 어떻게 노출시킬지’ 그리고 ‘제목을 어떻게 다는지’에 따라 여론의 향배가 달라지는 것이다. 마치 소비자들이 대형 할인유통업체로 몰리면서, 대형 할인업체가 어느 제조사의 상품을 어느 코너에 어떻게 진열하는지에 따라 제조사가 흥하고 망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위헌소송이 제기되리만큼 과도한 사회적 책임이 부과되는 신문과는 달리, 포털은 막강한 여론 주도 파워에도 불구하고 언론 매체로서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며 사회적 견제와 감시에서 자유롭다는 문제가 있다. 현행법상 미디어다음을 제외한 포털 뉴스는 신문법상의 정기간행물도, 인터넷신문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포털 업체는 정보통신부의 정책에 따라 사업이 좌우되는 전기통신사업법상의 전기통신사업자이기 때문에 정부의 뜻을 거스르기 쉽지 않다. 집권 권력의 입장에서 볼 때 이처럼 편리한 도구가 또 있을까?

지난달 23일의 상황을 살펴보자. 당시 종이신문들이 비중 있게 다루었던 벨기에 브뤼셀의 북한인권대회 소식은 포털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반면, 노무현 대통령의 인터넷 대화 기사는 넘쳐 나고 있었다. 노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기사는 화려한 제목을 달아 눈에 잘 띄게 배치했고 검색어로 추천하기도 했다. 반면,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북한인권대회는 제목도 밋밋했다. 그 결과 젊은 층에 북한인권대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포털의 특성 때문에 권력에서 배제된 야권은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들은 포털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 역설의 주인공들은 지금 이 글을 인터넷이 아니라 종이신문으로 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포털과 권력의 잘못된 만남’을 계속 내버려 두어서는 정치도 포털도 발전하지 못한다. 이제라도 그 영향력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포털에 요구해야 한다.

김혜준 자유주의연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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