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시국선언

  • 입력 2006년 4월 1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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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 데모가 절정에 이른 1960년 4월 25일, 서울과 지방의 대학 교수 258명이 서울대 교수회관에 모여 시국 수습을 위한 14개항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학생들의 시위는 정의감의 발로이며, 부정 불의에 항거하는 민족정기의 표현이라는 ‘양심선언’이었다. 당시 교수단 시국선언은 학생들과 시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고,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다음 날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는 특별담화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교수들이 4·19혁명의 완성을 이끌어 낸 것이다.

▷우리나라 민주화 과정에서 대학과 종교계의 역할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정치적 암흑기에 시국선언이란 이름으로 군사 독재정권을 비판하고 근본적 대안을 모색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은 거기에서 희망을 보았고, 당시 해외 언론도 큰 관심을 보였다. 대학 교수와 종교인들의 시국선언이 중요한 언로(言路)였던 셈이다. 1976년 서울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3·1구국선언, 1987년 6월 항쟁과 교수시국선언 등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사건으로 꼽힌다.

▷과거 시국선언은 절대적 권력에 대한 일종의 저항수단이었다.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오직 국민의 뜻에 충실했기에 그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런데 요즘은 사이비(似而非) 시국선언이 판을 친다. 양심선언이 아니라 ‘비양심선언’이다. 국민적 지지의 표현이었던 시국선언에 편승해 너도나도 한 건(件) 올려 보자는 식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스크린 쿼터 사수, 생명과 평화를 위한 시국선언…. 특정 집단의 일방적 주장을 시국선언이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시국선언에 대해 대법원이 유죄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전교조가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발표한 시국선언은 민주노동당을 공개 지지한 것이고 이는 공직선거법 위반이라는 결론이다. 명백한 선거운동을 하면서도 시국선언이라는 말을 갖다 붙였으니 실은 사기나 다름없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기성 시국선언이 또 얼마나 쏟아질까.

송대근 논설위원 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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