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요코타 메구미

  • 입력 2006년 4월 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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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소설보다 더 기기묘묘한 스토리다. 1977년 일본 니가타에서 여중생 요코타 메구미(橫田惠)가 납치된다. 그녀는 북한 공작선에 실려 북으로 끌려간다. 대남(對南) 공작 부서에 배치된 그녀는 김철준과 결혼하게 된다. 김철준은 1978년 전북 군산시 선유도에서 실종된 고교생 김영남(당시 16세)이다. 북이 대남 공작에 이용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에서 생사람을 납치해 가던 시절이었다. 1986년 결혼한 둘 사이에서 김혜경이라는 아이가 태어난다.

▷2002년 북-일 정상회담 때 북은 “요코타가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의 가족은 믿지 않았다. 김용순(2003년 사망) 노동당 비서가 1997년 “요코타는 살아 있다”고 말했다는 보도도 있었던 판이다. 더욱이 “그녀가 김정철(김정일의 차남)의 가정교사를 5년간이나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북이 ‘너무 많이 아는’ 그녀를 일본에 돌려보내기가 껄끄러워서 죽었다고 둘러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편 김철준도 ‘가짜’일지 모른다고 의심했다.

▷김철준의 머리카락을 얻으려 했으나 북은 “특수기관원이라 안 된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일본은 첩보작전처럼 그의 생체정보를 빼냈다. 그를 면담하면서 가족사진에다 약물을 발라 지문과 피지(皮脂)를 채취했다. 또 그와 악수하기 전 미리 손에 약물을 발라 체액을 채집하는 방법도 썼다. 결과는 김혜경의 진짜 아버지였다. 일본은 김철준이 한국에서 끌려간 ‘김영남’이라는 것을 알고는 올해 2월 군산의 부모들을 만나 유전자 정보를 얻었다. 일본은 최근 손녀 김혜경과 군산 ‘조부모’들의 그것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보도다.

▷북은 곤경에 처하게 됐다. 달러 위조로 시달리고, 일본 내 대북 여론 악화로 고민하는 판에 한국에서도 납북자 문제로 들끓을 것이기 때문이다. ‘납치’ 소리만 나와도 입을 틀어막고 내쫓는 북한이 이 과학적인 증거 앞에서 어떻게 나올까 궁금하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아무리 성기어도 빠뜨리는 것이 없다(天網恢恢 疎而不漏·천망회회 소이불루)’라는 말이 떠오른다. 북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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