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심규선]교육부 차관

  • 입력 2006년 3월 20일 04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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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불행을 보면서 또 다른 불행을 예감하는 것이 좀 그렇긴 하다. 이기우 전 교육인적자원부 차관 얘기다. 그가 교육부 차관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자는 성급하게 그의 퇴임 이후를 떠올렸다. 차관이 됨과 동시에 대학 총장 자리도 보장받았다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상황은 변했다. ‘또 다른 불행’이란, 손에 다 들어온 대학 총장 자리까지 날아가게 됐다는 뜻이다. 교육부 차관으로 퇴임한 사람에게 대학 총장만큼 좋은 자리도 없다. 전문성이 있기 때문에 의자가 편안하다. 자리에 걸맞은 대접과 4년간의 임기 보장도 매력이다. 그런 좋은 자리를 애태우지 않고 ‘덤’으로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실제로 최근 20년간 퇴임한 교육부(문교부) 차관의 상당수가 대학 총장이 됐다. 사립대 총장의 경우는 ‘모셔 간다’는 말이 정확하다. 대학을 보호하고, 키우고, 홍보하는 데 교육부 차관만큼 좋은 간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이 원하는 교육부 차관에도 ‘등급’이 있다. 교육부에서 잔뼈가 굵고, 능력도 있고, 재직 기간이 긴 사람은 A급이다. 이런 사람은 두세 대학의 총장을 거푸 지낸다. 지금도 총장으로 있는 C, L 씨가 대표적이다.

그 다음 그룹이라도 한두 대학의 총장은 거뜬하다. ‘연때’가 맞지 않아 총장을 못하면, 대학 이사장이나 교수라도 지낸다.

최근 20년간 퇴임한 이 전 차관의 전임자 14명 중 8명이 대학 총장 또는 이사장을 지냈거나 현재도 재직 중이다. 교수 직을 갖고 차관을 지낸 뒤 다시 대학으로 돌아간 최희선, 김신복 전 차관, 경제통인 이영탁 전 차관을 제외하면 11명 중 8명이 ‘전관예우’를 받은 셈이다. 퇴임한 지 얼마 안 되는 두 차관도 얼마 안 있어 어느 대학에선가 모셔 갈지 모른다.

이기우 전 차관은 어떤가. 그는 고졸 9급 신화의 주인공이다. 39년간 본부 과장과 국장, 부교육감, 기획관리실장 등 알토란 같은 자리를 모두 거쳤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공무원’이라니 능력도 문제가 없다. 2월 1일에 취임했으니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2년간은 자리를 보전했을 것이다. 그의 전임 차관 5명의 평균 재임 기간이 1년 하고 하루였으므로 2년은 장수에 속한다. 그는 대학이 눈독을 들일 만한 조건을 두루 갖춘 ‘특 A급’ 교육부 차관이었던 것이다. 두 군데의 총장만 지내도 8년은 더 일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닌 것 같다. 교육부 차관이 교육 문제가 아니라 골프와 거짓말 때문에 물러났다. 사사로운 정에 묶여 ‘총리의 남자’ ‘총리의 비서실장’으로 퇴진한 것도 공직자에게는 치명적인 흠결이다. 재임 기간은 43일로 47명의 역대 교육부 차관 중 최단명이다. 종전의 기록이 44일이었으니까 이틀만 더 버티면 ‘최단명’이라는 불명예는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루도 더 견디지 못할 만큼 그는 설 땅을 잃었다. 교육부 차관 출신 중 최초로 검찰 소환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이런 사람을 총장으로 모셔 갈 대학이 있을까.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초대 안호상 장관부터 지금의 김진표 장관까지 교육부 수장 47명은 모두 대학 총장, 교수, 정치가 출신의 ‘외인부대’였다. 그러다 보니 교육 공무원들에게 장관은 ‘나그네’일 뿐이다.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교육 공무원들이 “새로 온 장관이 맘에 안 드는 정책을 추진할 때 두세 번만 ‘열심히 검토 중’이라고 하면 장관이 바뀐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이처럼 텃세가 심한 교육부에서 차관의 상징성은 크다. 공무원을 장악해서 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있다. 장관이 못하는 일을 차관이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느 때보다 교육 현안이 산적해 있고 조직의 변화와 변신을 요구받고 있는 요즘이다. 그런 중요한 시점에 이 차관은 낙마했다.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유능한 공무원보다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부적절한 처신을 하지 않는 공무원이 필요하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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