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총리 사의표명 안팎]지방선거 악재 꼬리 자르기?

  • 입력 2006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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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골프 반성하라” 시위이해찬 국무총리의 3·1절 골프회동에 대해 시민단체인 활빈단 홍정식 단장과 애국운동국민대연합 소속 회원들이 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 앞에서 골프채를 놓고 총리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3·1절 골프 반성하라” 시위
이해찬 국무총리의 3·1절 골프회동에 대해 시민단체인 활빈단 홍정식 단장과 애국운동국민대연합 소속 회원들이 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 앞에서 골프채를 놓고 총리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이훈구 기자
이해찬 국무총리의 사실상 사의 표명은 ‘불법 정치자금 제공 기업인들과 골프를 했다’는 본보 보도(4일자 1면 참조) 이후 약 24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본보 보도가 나간 뒤 총리비서실은 대응책을 논의했고, 이날 밤 이 총리는 사의 표명을 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웬만해선 굽히지 않는 이 총리의 성격상 이번 조치는 이례적이란 평가여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노 대통령 대선자금 꼬리 자르기?

이강진(李康珍) 총리공보수석비서관은 5일 “총리는 사의 표명에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었다”고 소개했으나 총리실 내에선 사실상 사의 표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예전처럼 일과성 해명으로 넘어가기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그 배경엔 우선 이 총리의 골프 동반자에 2002년 대선자금을 건넨 기업인들이 포함됐다는 점이 꼽힌다. 자칫하다간 이 총리의 골프 파문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로 불똥이 튀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골프에 동행한 기업인 K, P, S 씨 등은 2002년 대선을 전후해 노 대통령의 ‘집사’로 불리며 부산 선대위 회계책임을 맡았던 최도술(崔導術)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돼 2004년 5월 법원에서 유죄 판결 등을 받았다.

당시 검찰은 노 대통령에 대해 “대선자금 모금에 직접 관여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지만 최 전 비서관과 연루된 기업인들이 거론되면 대선자금의 ‘악몽’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이들 기업인이 제공한 돈은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 캠프로 들어가 선거자금으로 쓰였다.

이에 따라 이 총리가 본보 보도 이후 하루 만에 사실상 사의 표명을 한 것은 이 파문이 노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로 튀지 않도록 ‘꼬리 자르기’를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 지방선거 감안한 악재 조기 제거?

5월 지방선거를 불과 두 달여 앞둔 상황도 사의 표명의 주요 변수로 보인다.

이 총리의 골프 파문이란 악재를 조기에 정리하지 않고 미적거릴 경우 여당이 계속 이 문제로 시달리는 것은 물론 지방선거 국면을 주도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정동영(鄭東泳) 열린우리당 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3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치인과 공직자의 자숙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 바 있고, 당의 입장이 충분히 전달된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 “아프리카 순방을 다녀와서 보자”

청와대에서는 이 총리가 물러날 가능성을 점치는 관측이 적지 않다. 지방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는 터라 열린우리당이 이 총리의 퇴진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노 대통령이 4일 이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 총리의 사과에 대해 ‘신경 쓰지 말라’는 식으로 대응한 것이 아니라 ‘순방 다녀와서 보자’고 여운을 남긴 것이 노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노 대통령의 이런 반응에 따라 이 총리가 5일 대국민 사과와 사퇴 절차에 착수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계속 이어질 야당의 사퇴 압박도 무시 못할 변수라는 것. 현재 과반이 안 되는 열린우리당의 국회 의석으로는 야당의 총리 해임건의안을 차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청와대 일각에서는 이 총리가 결국 유임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 총리가 사퇴하면 당장 국정운영 시스템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 그 이유.

노 대통령의 의중에 정통한 이 총리를 기둥으로 ‘양극화 문제 등 중장기 과제는 대통령, 현안 대응은 총리’라는 분권형 국정운영의 틀을 세워 놓았는데 이 틀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엔 여론에 떠밀린 ‘경질인사’를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도 한몫하고 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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