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 대통령 대선자금 꼬리 자르기?
이강진(李康珍) 총리공보수석비서관은 5일 “총리는 사의 표명에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었다”고 소개했으나 총리실 내에선 사실상 사의 표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예전처럼 일과성 해명으로 넘어가기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그 배경엔 우선 이 총리의 골프 동반자에 2002년 대선자금을 건넨 기업인들이 포함됐다는 점이 꼽힌다. 자칫하다간 이 총리의 골프 파문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로 불똥이 튀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골프에 동행한 기업인 K, P, S 씨 등은 2002년 대선을 전후해 노 대통령의 ‘집사’로 불리며 부산 선대위 회계책임을 맡았던 최도술(崔導術)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돼 2004년 5월 법원에서 유죄 판결 등을 받았다.
당시 검찰은 노 대통령에 대해 “대선자금 모금에 직접 관여한 증거가 없다”고 밝혔지만 최 전 비서관과 연루된 기업인들이 거론되면 대선자금의 ‘악몽’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이들 기업인이 제공한 돈은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 캠프로 들어가 선거자금으로 쓰였다.
이에 따라 이 총리가 본보 보도 이후 하루 만에 사실상 사의 표명을 한 것은 이 파문이 노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로 튀지 않도록 ‘꼬리 자르기’를 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 지방선거 감안한 악재 조기 제거?
5월 지방선거를 불과 두 달여 앞둔 상황도 사의 표명의 주요 변수로 보인다.
이 총리의 골프 파문이란 악재를 조기에 정리하지 않고 미적거릴 경우 여당이 계속 이 문제로 시달리는 것은 물론 지방선거 국면을 주도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정동영(鄭東泳) 열린우리당 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3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치인과 공직자의 자숙이 필요하다는 말을 한 바 있고, 당의 입장이 충분히 전달된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 “아프리카 순방을 다녀와서 보자”
청와대에서는 이 총리가 물러날 가능성을 점치는 관측이 적지 않다. 지방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는 터라 열린우리당이 이 총리의 퇴진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노 대통령이 4일 이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 총리의 사과에 대해 ‘신경 쓰지 말라’는 식으로 대응한 것이 아니라 ‘순방 다녀와서 보자’고 여운을 남긴 것이 노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노 대통령의 이런 반응에 따라 이 총리가 5일 대국민 사과와 사퇴 절차에 착수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계속 이어질 야당의 사퇴 압박도 무시 못할 변수라는 것. 현재 과반이 안 되는 열린우리당의 국회 의석으로는 야당의 총리 해임건의안을 차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청와대 일각에서는 이 총리가 결국 유임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 총리가 사퇴하면 당장 국정운영 시스템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 그 이유.
노 대통령의 의중에 정통한 이 총리를 기둥으로 ‘양극화 문제 등 중장기 과제는 대통령, 현안 대응은 총리’라는 분권형 국정운영의 틀을 세워 놓았는데 이 틀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엔 여론에 떠밀린 ‘경질인사’를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도 한몫하고 있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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