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진홍]두번째 추기경 탄생, 사회화합 계기로

  • 입력 2006년 2월 2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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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는 여러 종교가 있습니다. 그 종교들은 제각기 삶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지녔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종교들은 각기 서로 많은 신도를 확보하려 하고 자신의 가르침이 널리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선교나 포교를 통한 ‘세(勢) 불리기’가 모든 종교의 지엄한 책무이기도 한 이유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록 개개 종교의 주장이나 가르침이 더없이 참되다 할지라도 이들은 서로 불가피하게 경쟁적이게 됩니다. 나아가 더불어 어울릴 수 없는 배타적인 태도나 독선을 예사로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종교들은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호 간의 긴장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때로는 서로 살육마저 범하는 사태를 낳기도 합니다. 그래서 종교가 오히려 현대 사회의 가장 곤혹스러운 문제 중의 하나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전쟁이나 테러 중 거의 모두가 종교가 원인(遠因)이거나 종교가 정당화하는 ‘종교전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종교 현상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인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른바 지배 종교가 몇 번이나 교체되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지금은 세계의 여러 종교가 함께 몰려 있습니다. 긴 전통을 통해 사람들의 의식 깊은 곳에 드러나지 않게 스며 있으면서 자아에 대한 성찰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불교도 있고, 인간다움과 사회 규범을 마련하여 삶을 틀 짓는 질서를 유지하는 유교도 있으며, 근대성의 전달자이면서 개인과 더불어 공동체의 온전함에 두드러진 관심을 보여 주는 그리스도교도 있습니다. 이 밖에 한풀이가 한 가지 특징이기도 한 무속신앙 등 이런저런 종교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여러 종교가 있다 보니 이들 사이에 긴장이 없을 수 없고,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종교 문화는 그 긴장과 갈등과 경쟁이 상대적으로 그리 심하지 않습니다. 다행한 일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종교 간의 평화’를 위한 노력을 진지하게 기울이고 있습니다. 불교의 비구니, 가톨릭과 성공회의 수녀, 원불교의 교무 등 여성 수도자들이 모여 종교 화합과 평화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 삼소회(三笑會)야말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각기 믿는 것이 다르고 생활규범도 다릅니다. 복장도 다르고, 종국적인 희구도 다릅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며 그 고통을 덜려는 염원만은 한결같이 공유하고 있습니다.

때마침 우리 가톨릭에 두 번째 추기경이 탄생했습니다. 이 일은 이 땅의 가톨릭이 세 불림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것을 바티칸이 승인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이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입니다. 가톨릭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기여한 공헌 등 지금까지 가톨릭이 있어 온 모습을 종합해 보면 그 상징적인 의미가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땅의 가톨릭을 위해 진심으로 경하해 마지않을 일입니다.

그런데 ‘제2 추기경 탄생’을 통해 더 반갑고 감격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종교’들이 모두 이 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갈등의 굉음이 여기저기에서 끊이지 않고 요란한 요즘 우리 사회에서 참으로 보기 드문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기회가 마치 종교적인 신념처럼 자신의 정당성만을 배타적으로 주장하는 우리네 정치인들은 물론 ‘갈등의 사슬’을 벗지 못하는 사회 각 분야 사람들에게 화합의 새로운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진홍 한림대 특임교수·종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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