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한기흥]화씨지벽(和氏之璧)

  • 입력 2006년 1월 23일 03시 03분


코멘트
중국 초(楚)나라 사람 화씨(和氏)는 옥 덩어리를 여왕((려,여)王)에게 바쳤으나 왕은 돌이라는 감정(鑑定)이 나오자 화씨를 월형((왈,월)刑)에 처해 왼쪽 발꿈치를 잘랐다. 화씨는 그 뒤 즉위한 무왕(武王)에게 이를 다시 바쳤으나 이번엔 오른쪽 발꿈치가 잘렸다.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옥 덩어리를 품고 사흘간 피눈물을 흘렸다. 이유를 묻는 왕에게 그는 “보옥(寶玉)을 돌이라 하고, 곧은 선비를 사기꾼이라 하는 것이 슬퍼서 그렇다”고 답했다. 왕은 옥 덩어리를 다듬어 보옥을 얻고 ‘화씨의 옥구슬(和氏之璧)’이라고 불렀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이야기다.

▷화씨지벽은 그 뒤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손에 들어갔다. 이를 탐낸 강대국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은 자국의 15개 성(城)과 바꿀 것을 요구했다. 실제론 성을 안 내주고 옥구슬만 차지할 속셈이었다. 진나라에 갔던 조나라의 인상여(藺相如)는 이를 알아채고 구슬에 흠집이 있는 곳을 알려 주겠다고 둘러댄 뒤 ‘아무런 흠집이 없는’ 화씨지벽을 되찾아 몰래 자기 나라로 돌려보냈다. ‘완벽(完璧)’이라는 말의 유래다.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에 관한 진실 규명을 촉구했던 젊은 과학자들이 회원으로 있는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홈페이지 ‘소리마당’ 코너에 19일 ‘논문과 발목’이라는 글이 올랐다. ID가 joke인 필자는 18년 전 석사논문을 쓸 때 지도교수가 “논문은 발목을 잘릴 각오로 써야 하네”라고 말한 사실을 떠올리며 자성(自省)했다. “이미 출판된 논문에서 오자(誤字)를 발견하기도 했고, 놓쳐 버린 참고 문헌을 투고 후에 발견한 적도 있다. 옥에 흠집이 있어 발목이 잘린다면 나는 손목까지도 잘렸어야 마땅하다.”

▷황 교수를 지지하는 누리꾼 등 2500명이 21일 서울 광화문시민열린마당에서 촛불 집회를 가졌다. 황 교수가 완벽하고 진실한 논문을 썼더라면 이들이 그의 연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추운 날씨에 그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화씨지벽’과 ‘완벽’은 과학도들이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고사(故事)이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