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한기흥]뉴 라이트, 뉴 레프트

  • 입력 2006년 1월 19일 03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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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가을엔 ‘우파(右派)’의 낡은 틀을 깨겠다는 자유주의 386, 486 등의 ‘뉴 라이트(New Right)’가 깃발을 올리더니 작년 여름부터는 ‘좌파(左派)’의 대안을 표방하는 ‘뉴 레프트(New Left)’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뉴 라이트는 지난해 전국 조직, 분야 간 연대조직으로 발전했다. 17일 온건진보 성향의 교수들이 ‘좋은 정책포럼’(공동대표 임혁백 고려대 교수, 김형기 경북대 교수)을 창립한 것은 뉴 라이트에 맞선 뉴 레프트가 새 막을 열었음을 뜻한다.

이 포럼은 창립선언문을 통해 ‘20세기 역사에서 좌파 노선이 결국 실패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모두 넘어서는 대안적 발전 모델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이들이 시장경제와 세계화의 중요성 등 자유주의적 가치를 수용한 것은 기존 좌파와 크게 다른 점이다.

사실 시장경제와 세계화는 우파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국이 한국보다 더 시장주의적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이고, 중국이야말로 세계화의 가장 두드러진 수혜국(受惠國)이라는 점만 보더라도 그렇다. 그러니 시장경제와 세계화를 거부하는 좌파가 설 땅이 얼마나 남아 있겠는가. 일부 국가에서 이를 거부하고 정치적으로 득세하는 세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 나라 국민은 빈곤의 확산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좋은 정책포럼’ 측은 1960, 7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급진적인 체제 변혁과 베트남전 반대 등을 부르짖었던 ‘신좌파(뉴 레프트)’를 의식해 뉴 레프트를 자처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지만 ‘21세기 한국판 뉴 레프트’로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자유주의연대(連帶) 등 뉴 라이트 그룹도, 우(右)라는 것이 낡은 보수까지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뉴 라이트’라는 지칭에 100%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1980년대 영국 대처리즘과 미국 레이거노믹스의 이념적 골격인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조화시키려는 이들을 ‘21세기 한국판 뉴 라이트’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아무튼 뉴 라이트와 뉴 레프트의 등장으로 우리 사회의 좌우 스펙트럼이 더욱 건강하고 생산적인 이념경쟁 속에서 새롭게 자리 잡아갈 가능성이 커졌다. 이들이 한편으로는 교집합(交集合)을 넓혀 가고 한편으로는 각자의 외연을 확장한다면 극단적 좌우 이분법 현상이 낳는 정치 경제 사회적 폐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양극(兩極)에서 출발하는 좌우보다는 중앙에서 출발하는 좌우가 국가의 지향점에 대해 ‘위험을 줄이면서’ 선택의 폭을 넓히는 데 유효하지 않겠는가.

특히 대한민국의 정통성, 시장과 정부의 관계, 노사관계, 대북관(對北觀) 등에서 접점을 찾지 못한 채 서로를 적대시해 온 수구 좌·우파와는 달리 뉴 라이트와 뉴 레프트는 어느 정도 공통점을 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좋은 정책포럼’의 김형기 공동대표가 18일 “진보냐 보수냐를 가리지 않고 무엇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좋은 정책인지를 놓고 뉴 라이트와 정책 경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뉴 라이트 쪽의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은 뉴 레프트의 등장에 대해 “국가만능주의와 극단적 민족주의에 치우쳐 있고, 북한의 전체주의 정권까지 용인하는 퇴행적 진보세력에 대한 비판적 대안을 모색한다는 점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경쟁과 생산을 지켜보자.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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