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승호]“인자 어찌 산다요”

  • 입력 2005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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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설마(雪魔)’가 정말 사람을 잡고 말았다.

4일 호남에 내린 첫눈은 ‘서설(瑞雪)’이 아니었다. 퍼붓고 또 퍼부었다. 눈송이는 또 얼마나 큰지 ‘호떡만 한 눈이 내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체육관 지붕조차 버티지 못하는 마당에 비닐하우스, 축사, 수산양식장 등은 눈뜨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5년 전 귀농해 전남 함평군에서 딸기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는 A(53) 씨. 하우스 6동이 폭삭 주저앉는 바람에 6000만 원의 피해를 봤다. “이틀 후에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 출하하려고 했는데…”라며 말문을 잇지 못하는 그의 손에는 하우스 시설 비용 4000만 원을 갚으라는 독촉장이 쥐여 있었다.

‘첫눈이 폭설이면 그해 큰 눈이 없다’는 속설도 농심(農心)을 배반했다. 12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차 폭설이 강타했다. 이틀간 잠잠하던 눈은 14일부터 다시 내려 복구 작업은 중단됐고,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젠 그치겠지 했던 눈은 21일 호남을 한숨 속으로 몰아넣었다. 수확하지 못한 채소가 눈 속에 파묻혀 흐물흐물 죽어갔다. 난방용 기름이 떨어져 냉해를 입은 작물을 보고도 손쓸 방법이 없었다. 농민들 입에선 ‘징허다’란 말이 저절로 나왔다.

쪽파 비닐하우스 40동 가운데 19동이 무너지는 피해를 본 전남 나주시의 한 농민은 “이건 재해가 아니라 재앙”이라고 말했다. 3년 전 폭우로 수박이 모두 쓸려 가는 피해를 본 그는 “재기할 시간도 없이 또 이런 시련을 안겨 주다니 하늘이 우리를 버린 것 같다”며 넋을 잃었다.

복구에 나선 농민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정부의 지원 대책이 농촌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농가가 가장 바라는 것은 ‘선(先)지원 후(後)복구’다. 피해를 본 시설물을 빨리 걷어내고 다른 작물을 심어야 하는데 복구비용은 이런저런 절차를 거쳐 40일 후에나 나온다니 애가 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사립학교법 공방으로 국회가 공전 중이라 복구비 지급이 상당 기간 늦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농민들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다.

복구 현장에서 만난 한 농민은 “재해 때마다 복구비 지급 시기를 앞당겨 달라고 입이 닳도록 얘기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라고 말했다. 농민들은 “높은 양반들이 현장에 얼굴만 내밀지 말고 농민이 정말로 원하는 일을 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닐하우스 재배 면적이 2ha 미만인 소농의 정부 보조 비율이 낮다는 것도 문제다. 피해가 나면 정부 보조 35%, 융자 55%, 자기부담 10%로 해결하는데 융자도 빚이요, 자기부담도 융자로 해결할 수밖에 없어 결국은 빚더미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이번 폭설은 공공시설보다 비닐하우스나 축사, 과수 등 사유재산에 큰 타격을 줘 농민의 체감고통은 집계된 액수보다 훨씬 크다. 특히 올해는 추곡수매제 폐지에다 쌀 수입 개방 동의안 국회 통과 등으로 농가의 시름이 더 깊어진 한 해였다. 여기에다 설해(雪害)까지 겹친 것이다.

6년 전 남편을 여의고 혼자 농사를 짓는 50대 촌부(村婦)가 쓰러진 비닐하우스에서 울먹이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우리 세 식구 생명줄이었는데 인자 어찌 산다요.”

정승호 사회부 차장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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