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권순활]재산권의 위기

  • 입력 2005년 12월 2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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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서 아르헨티나까지 길게 뻗은 라틴아메리카(중남미). 세계적 부자 나라인 북쪽 이웃 미국과 캐나다와 달리 궁핍과 억압, 부패와 포퓰리즘의 이미지가 짙다. 자연 조건과 천연자원은 물론 ‘공인된 세계사’의 무대에 등장한 시기조차 비슷한데 무엇이 운명을 갈랐을까.

‘부(富)의 탄생’을 펴낸 미국 칼럼니스트 윌리엄 번스타인 박사는 재산권에 주목한다. ‘영국의 자손’인 앵글로아메리카(북미)에선 재산권 보호와 개인적 자유가 정착됐다. 반면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라틴아메리카는 정부의 재산권 침해가 빈번한 이베리아반도의 풍토가 계속 악영향을 미쳤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의 중심적 경제 문제는 재산권 제도”라고 단언한다.

재산권은 경제적 발전과 쇠퇴를 가름하는 출발점이다.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인간적 존엄과 자유의 원천이기도 하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巨頭)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시민권과 재산권은 분리돼 존재할 수 없다고 봤다. 조선 후기 경제력 하락의 근본 원인도 탐관오리의 가렴주구(苛斂誅求)로 백성들이 각종 재산권을 보호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김승욱 중앙대 교수 분석)

요즘 사회적 갈등이 심한 정책일수록 재산권 침해 논란이 거세다. 종합부동산세와 1가구 2주택 중과세 같은 부동산정책, 특정 기업을 겨냥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종교계와 사학재단의 반발이 거센 사립학교법은 대표적 사례다. ‘부동산 값 안정’ ‘재벌 개혁’ ‘사학 비리 척결’을 내세운 정책의 내용이 사유재산권 보장과 과잉입법금지라는 헌법 정신의 본질을 훼손했느냐가 논란의 핵심이다.

위헌(違憲) 여부에 대한 판단은 필자의 역량 밖이다. 법률로 먹고 사는 전문가조차 시각이 엇갈리는데 문외한이 함부로 나설 실력도, 배짱도 없다. 다만 정책의 타깃 집단은 물론 상당수의 제3자도 반발하거나 걱정하는 걸 보면 기득권층의 이기적 저항으로 폄훼할 수준은 넘은 것 같다.

확실한 것은 경제에 드리울 부담이다.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하는 것이 경제다. 배경이야 어찌됐든 재산권 불안이 커지면 의미 있는 생산 활동은 위축된다. 밤잠 안 자고 기업을 키우거나 재산을 늘려 봐야 인정받기는커녕 ‘더 살찐 착취 대상’만 된다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분명히 위험하다.

“강남 부자나 삼성, 사학재단이나 힘들지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착각이다. 얽히고설킨 현실 경제구조에서 ‘가진 자’의 불행은 ‘덜 가진 자’의 행복보다는 사회적 공멸(共滅)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종부세 대상은 물론 아니고 강남 근처에도 못 살아 본 내가 우리 사회의 이런 풍조를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화 시대에는 ‘생물학적 조국’과의 결별도 과거보다 쉬워졌다. 경제적, 지적 상위계층일수록 더 그렇다. 스웨덴의 테니스 스타였던 비외른 보리는 모국의 살인적 소득세율에 저항해 모나코로 옮겨가 선수생활을 마칠 때까지 머물렀다. 한국에서도 최근 몇 년간 해외로 빠져나간 돈이 급증했다.

스페인 출신의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경제사(經濟史)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역사의 궤적(軌跡) 속에 뒤처진다”고 했다. 재산권과 경제의 함수관계는 이미 입증됐다. 재산권의 위기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때인 것 같다.

권순활 경제부 차장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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