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38>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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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제게 잠시 틈을 주시고, 좌우를 물리십시오.”

“다들 물러가라!”

한신이 그렇게 소리쳐 좌우를 물리쳤다. 방안에 두 사람만 남게 되자 괴철이 나지막하지만 진지하게 말했다.

“대왕의 상을 보니 높아야 제후에 지나지 않은데, 그나마 위태로워 안정된 상이 못 됩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한신이 떨떠름해져 물었다. 괴철이 몸을 바로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했다.

“세상이 처음 어지러워졌을 때, 영웅호걸들이 스스로 왕을 일컬으며 한번 크게 외치자 천하의 뜻있는 선비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이 겹치기는 물고기 비늘 같고 기세는 불길이나 바람처럼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그때 그들이 걱정한 것은 오직 진나라를 쳐 없애지 못할까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진나라가 무너져도 그들의 걱정은 없어지지 않고, 세상은 전보다 더욱 끔찍해졌습니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서로 다투게 되면서 죄 없는 사람들의 간과 쓸개가 땅바닥을 덮었으며, 들판에 나뒹구는 아비와 자식의 가여운 해골이 또 얼마나 되는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초나라 사람 항우가 서초패왕을 일컬으며 팽성에서 일어나, 여기저기서 맞서는 이들을 쳐부수고 달아나는 적을 쫓아 형양(滎陽)에 이르렀을 때는 머지않아 천하대세가 판가름 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가 진나라를 멸망시킨 승세를 타고 멍석 말듯 하는 기세로 곳곳을 휩쓰니, 그 위세는 천하를 벌벌 떨게 할 만큼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항왕의 군사들도 경현(京縣)과 삭현(索縣) 사이에서 곤경에 빠지고 서산(西山)에 가로막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된 지 이제 3년이나 되었습니다.

한왕(漢王)은 수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공현(鞏縣)과 낙현(洛縣) 사이에서 험준한 산과 물을 방패 삼아 하루에도 여러 차례 전투를 벌였으나 작은 공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군사가 꺾이고 싸움에 져도 누구 하나 달려와 도와주는 이가 없어 형양에서 지고 성고에서 군사를 잃은 채 드디어 완성(宛城)과 섭성(葉城) 사이로 달아났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형양 성고로 돌아가 지금은 광무산 한 모퉁이에 진채를 얽고 있으나, 그 고단함은 원병을 요청하러 달려오는 한왕의 사자로 미루어 군왕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슬기로운 한왕도 용맹스러운 항왕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군사들의 날카로운 기세는 험준한 요새를 만나 꺾이고, 양식은 창고에서 다 떨어졌습니다. 둘 사이에 끼인 백성들은 이쪽저쪽이 번갈아 빼앗아 가 날로 원망이 커지고, 민심은 기댈 곳이 없어 흔들리고 있습니다. 신이 헤아리건대, 이러한 형세는 참으로 하늘이 내리신 성현이 아니면 천하를 재화(災禍)에서 구할 수가 없을 듯합니다.”

“그럼 그런 성현이 있다는 것이오? 그게 누구요?”

듣고 있던 한신이 불쑥 그렇게 물었다. 괴철의 얘기가 너무 장황하게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 같아 말허리를 자른 셈이었다. 그래도 괴철은 그때껏 해오던 말투를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더 위압적이 되어 하던 얘기를 이어갔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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