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37>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2월 1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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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무섭(武涉)은 말을 맺고 한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얼음에 박 밀 듯 거침없는 언변은 아니었으나, 자못 준엄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데가 있었다. 한신의 얼굴에도 잠시 동요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담담한 표정이 되어 무섭의 말을 받았다.

“사신의 말씀이 사뭇 억지스럽지만은 않지만, 자신의 주장에 이롭게 하려고 이로(理路)를 비튼 데가 있는 성싶소. 과인은 예전에 항왕을 섬긴 적이 있으나, 벼슬은 낭중(郎中)에 지나지 않았고 하는 일도 기껏 극(戟)을 들고 군막을 지키는 것이었소. 거기다가 항왕은 과인이 바른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았으며, 그럴듯한 계책을 올려도 써 주지 않아 초나라를 버리고 한나라로 간 것이오. 그같이 불우(不遇)를 입었을 뿐인데, 그걸 어찌 옛 연고라 내세울 수 있겠소?

하지만 한번 한왕의 휘하에 들자 모든 것이 달라졌소. 한왕은 내게 상장군의 인(印)을 주었으며, 수만 명의 군사를 딸려 주었소. 자기의 옷을 벗어서 나에게 입히고, 자기의 음식을 내게 나눠 주었소. 내 말은 받아들이고 올린 계책은 써 주어 내가 이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오. 그런 한왕을 어찌 탐욕스럽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만 나무랄 수 있겠소?

무릇 남이 나를 가깝게 여기고 믿어 주는데 그를 저버리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오. 비록 그로 인해 죽게 될지라도 이 마음을 바꿀 수는 없으니, 나를 위해 항왕께 그렇게 전해 주시오.”

그리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좌우를 돌아보고 말했다.

“여봐라. 사신을 객관(客館)으로 안내하여라. 그곳에서 하룻밤 편히 쉬게 한 뒤에 국경 밖으로 모셔 드리도록 하라.”

무섭도 더 매달려 봤자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무안한 얼굴로 근시들의 안내를 받아 객관으로 갔다.

제왕 한신이 초나라 사신을 맞아 몇 마디 들어 보지도 않고 객관으로 내쫓았다는 말은 곧 제왕 궁궐 안에 널리 퍼졌다. 괴철이 그 말을 듣고 한신을 찾아갔다. 천하 패권의 향방이 한신에게 달린 것을 새삼 확인하고, 기이한 계책을 써서 한신을 감동시켜 볼 작정이었다.

“괴(괴) 선생은 무슨 일로 과인을 찾아왔소?”

한신이 괴철이 찾아온 까닭을 짐작하고 그렇게 물었다. 괴철이 시치미를 떼고 대꾸했다.

“제가 일찍이 관상 보는 법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군왕께서 궁금한 게 없으신지요?”

“선생의 관상 보는 법은 어떠합니까?”

느닷없는 괴철의 말에 한신이 약간 어리둥절해 물었다. 괴철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줄줄 늘어놓았다.

“사람이 고귀하게 되느냐 비천하게 되느냐는 골상(骨相)에 달려 있고, 걱정거리가 생기느냐 기쁜 일이 찾아오느냐는 얼굴빛과 모양에 달려 있으며, 뜻을 이루느냐 이루지 못하느냐는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살피면 만에 하나라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좋소. 그럼 선생께서는 과인의 관상을 어떻게 보시오?”

이번에는 괴철의 말을 재미있게 여긴 한신이 불쑥 물었다. 괴철이 갑자기 엄숙해진 얼굴로 말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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