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경자]가난한 사람들의 ‘이웃돕기 성금’

입력 2005-12-10 02:54수정 2009-10-0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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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햇살이 따스해도 바람은 칼 같았다. 어디 칸막이가 된 곳만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도 두 면은 대충 칸막이가 된 버스정류장에서 갈매기처럼 버스 오는 방향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만에 가야 할 방향의 버스가 왔다. 비어 있는 앞자리에 앉았다. 햇볕이 차창으로 가득 밀려들어 바깥의 추위를 금방 잊었다. 끼고 있던 장갑, 모자를 벗고 목도리도 느슨하게 풀었다. 바깥의 종종걸음 치는 사람들은 그저 간판이나 건물, 가게 진열장의 물건들과 하나를 이룬 풍경으로 비쳤다. 바로 얼마 전의 내 모습을 그들에게서 연상하는 게 불가능해진, 나는 빼고 보탤 것 없는 ‘천민(賤民)’이었다.

나른하게 거리의 세밑 풍경을 바라보는데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어떤 말이 들려왔다. 요즘 주식이 하늘 높이 올라서 돈 번 사람이 많은데 그중엔 떼돈을 번 어린이와 청소년도 있다더라. 번 돈이 수십억 대에서 수백억 대까지라고 한다. 그들이 어린 나이에 어떻게 돈을 벌었겠느냐. 다 부자 부모를 둔 덕이 아니겠느냐.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뭘 했기에 나한텐 그런 거 하나 남겨 주지 못하느냐는 것이었다. 맨 끝의 말에는 부러움과 비아냥거림이 실린 것처럼 들렸다.

나는 방금 라디오에서 들은 그 부자 어린이를 생각했다. 아직 집 앞까지 가자면 수십 분은 더 타고 있어야 하는데 머릿속이 분주해서 지루한 것도 잊었다. 나는 부자로 살아 본 적이 없으니 그런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우가 행복의 보증수표일지, 재앙이나 화근의 씨앗일지 판단도 안 서고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꾸만 저게 뭐 좋아,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있는 것을 즐기려면, 소중한 걸 알거나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처음부터 뭐가 그득하면 있는 것을 즐기지도 못하고 소중하지 않으니 귀한 것을 가졌다는 기쁨도 없을 것이다. 금으로 만든 집에서 잠자고 금으로 만든 옷을 입고 금으로 지은 밥을 먹고 금똥을 눈다 한들 무슨 기쁨이 있겠는가.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고 돈이 가치의 잣대가 되는 사회이니 스스로 하는 건 숨만 쉬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부자들의 하늘 아래 이런 사람들도 산다.

부모 없는 소년이 비닐하우스에서 개에게 물려 죽었다. 부모는 일하러 가고 어린아이들만 남아 있다가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라면만 먹어서 쌀밥을 한 끼 먹어 보는 게 소원인 가족도 있다. 점심을 먹지 못하는 어린이 등 가난 때문에 목숨의 가치가 원천적으로 폄훼된 삶을 사는 사람이 많다. 풍요로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사회에서 ‘절대빈곤층’이 늘어간단다.

세밑이다. 하지만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세운 사랑의 온도계는 8일 현재 0.6도로 예년에 비해 유난히 낮다 한다.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은 사회에서 불우한 이웃을 돕자고 줄서는 사람은 보통 가난한 사람들이다. 생활의 어려움을 상상하거나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의 동정심을 자극해서 ‘성금’을 모은다. 성금을 냈다고 얼굴 내고 싶은 사람, 얼굴 내서 알려져야 할 사람들에게 그 돈은 성금이 아니라 자기 광고료다.

정부라는 건, 돈에 치여 하늘이 보이지 않고 담장 너머의 궁핍이 시궁창 내처럼 역겨운 사람들을 최대한 줄이고, 가난 때문에 삶이 시궁창처럼 되는 계층도 최대한 줄이는 것이 주어진 임무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다고 세금을 이리 짜내고 저리 짜내는 거 아닌가.

혹 우리는 권력에 가까이 간 사람들을 위한 성금 모금에는 긴 줄을 섰으되 극빈 계층엔 무관심한 부류 아닌가. 예년과 달리 첫 추위가 유난한 을유년 세밑에 나 또한 파렴치한 욕망과 이기심의 극단을 부끄러워하지 못하는 ‘잘난 사람’이 아닐까 두렵다.

이경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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