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장일석 금융정보분석원 기획행정실장

  • 입력 2005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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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재무부가 설립된 이후 재무부 재정경제원 재정경제부를 통틀어 57년 만에 처음으로 일반직 가운데 정년퇴직을 하는 공무원인 장일석 금융정보분석원(FIU) 기획행정실장. 환갑 직후인 30일 공직을 떠나는 그는 “공무원이 되던 해 어머니께 들은 꾸중이 이후 떳떳하게 사는 데 가장 중요한 지침이 됐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재정경제부
1948년 재무부가 설립된 이후 재무부 재정경제원 재정경제부를 통틀어 57년 만에 처음으로 일반직 가운데 정년퇴직을 하는 공무원인 장일석 금융정보분석원(FIU) 기획행정실장. 환갑 직후인 30일 공직을 떠나는 그는 “공무원이 되던 해 어머니께 들은 꾸중이 이후 떳떳하게 사는 데 가장 중요한 지침이 됐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재정경제부
《“어느 날 퇴근했더니 산하기관 사람이 집에 사과 한 궤짝을 놓고 갔더군요. 집사람이 별 생각 없이 받아 뒀던 겁니다. 저녁 밥상에 앉으니 어머니가 ‘말단 공무원으로 들어가 저런 거나 받아먹으려면 당장 그만두고 장사나 해라’며 추상같이 호통을 치시더라고요. 집사람이 슬그머니 사과를 돌려주려고 나갔다가 통행금지에 걸려서 그날 집에 돌아오지 못했죠.” 30일 재정경제부에서 정년퇴직하는 장일석(張日碩·60) 금융정보분석원(FIU) 기획행정실장(부이사관급)은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던 1975년 겨울 어느 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공무원이 된 첫해 생긴 그날 사건이 30년의 삶을 결정했어요. 그 후 단 한 번도 선물 같은 걸 받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마음속에는 사법시험에 몇 번이나 떨어진 아들에 대한 섭섭함도 있었겠죠. 하지만 그날 어머니의 말씀 때문에 부끄럼 없이 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과천청사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런 얘기를 하는 장 실장의 얼굴에는 2001년 작고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 있었다.

장 실장은 경제부처 57년 역사상 일반직으로는 처음으로 정년퇴직을 하는 공무원이다. 동료나 선후배들은 일정 직급을 거치면 산하기관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그는 “무능해서”라고 겸양을 보였다.

장 실장은 7급(주사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재무부 이재국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 후 15년간 감사관실에서 재무부 산하기관 감사를 맡았다. 뇌물이나 접대를 전혀 받지 않고 원칙을 지키다 보니 ‘칼 감사’라는 별명도 얻었다.

“저한테 ‘로비’가 안 먹히니까 윗사람들에게 ‘제발 그 사람만 보내지 말아 달라’고 사정했다는 얘기가 나오더군요. 김대중(金大中) 정부 초기에 대통령사정비서관실로 파견 갈 뻔하다가 없던 일이 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 너무 강성’이라는 얘기 때문이었다고 해서 허허 웃었습니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장 실장은 대통령이 바뀌는 것을 6번 지켜봤다.

“독재정권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공무원으로서 제일 일할 맛이 나던 때는 박 대통령 시절이었습니다. 최고 엘리트들이 모여 나라를 잘살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일했죠. 경부고속도로나 포항제철 같은 대형사업을 추진하면서 ‘이걸 해야 한다, 이게 되면 잘살 수 있다’는 확신에 차 밤새워 일하는 사람들로 재무부가 가득했어요.”

반대로 1980년대 후반의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시절을 가장 안타까운 때로 기억했다.

“사회적 요구가 방만하게 터져 나오면서 ‘경제 동력’이 멈춰 버린 것 같았어요. 그때 정부가 한국 풍토에 맞는 노사관계를 제대로 정착시켰다면 한국경제는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역사와 경제를 되돌릴 힘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대통령은 정말 잘 뽑아야 합니다.”

노무현(盧武鉉) 정부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현했다. “현 정부 들어 이렇다 할 ‘분배정책’을 쓴 것도 아닌데 정권 초기에 분배문제가 전면으로 부각돼 손해를 본 것 같아요. 여기에는 국민에게 정책을 제대로 알려야 할 홍보의 책임도 있습니다.”

김용환(金龍煥) 전 재무부 장관을 시작으로 재무부 재경원 재경부를 거치며 그가 ‘모신’ 장관이나 경제부총리는 21명. 가장 존경하는 장관으로는 이규성(李揆成) 전 재경부 장관을 꼽았다. “이 전 장관은 업무 스타일이 합리적이고 효율적이어서 후배들의 존경을 많이 받았어요. 일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잘 알았고 권위로 지시하기보다 논리로 후배를 이끌었죠.”

일하는 짬짬이 모은 자료를 토대로 책 2권을 펴내기도 했다. 은퇴를 앞두고는 30년간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져 온 일본의 우경화를 경계하는 ‘제2의 진주만 침공’이라는 책을 한 권 더 펴냈다.

1945년 12월 24일 태어난 그는 정년퇴직을 일주일 앞두고 환갑을 맞는다. 조기 퇴직이 보편화된 요즘 세태에서는 힘든 일이다.

“청년 때 들어와 노인이 돼 떠나는데 아쉬움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오랜 시간을 떳떳하고 당당하게 살아 왔다는 자부심이 더 큽니다. 은퇴하면 고향인 전북 장수군 번암면에 있는 흥성 장씨 집성촌에 내려가 어머니를 기념하는 ‘사모정(思母亭)’을 짓고 주변에 나무를 키울 생각입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장일석 FIU 기획행정실장은

△1945년 전북 장수군 출생

△1966년 한양대 정치학과 졸업

△1975년 성균관대 졸업

△1976∼1982년 재무부 이재국 근무

△1982∼85년 재무부 공보관실 근무

△1985∼2000년 재정경제원 감사관실 근무

△2000∼2003년 금융감독위원회 FIU 제도운영과장

△2003년∼현재 재경부 FIU 기획행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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