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18년 佛시인 아폴리네르 사망

  • 입력 2005년 11월 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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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우리의 사랑도 흘러간다/인생은 얼마나 느리고/또 얼마나 희망은 강렬한가….”

프랑스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비련의 노래를 흘려보냈던 시인은 20세기의 에스프리였다. 새로운 예술과 정신의 고취자요 실행자였다. 입체파, 미래파, 야수파, 다다이즘…. 새로운 유파가 나올 때마다 언제나 그 선구자였다. 쉬르레알리슴(초현실주의)은 그의 조어(造語)다.

비평가 마르셀 레몽의 말대로 20세기 초입 프랑스 예술이 열어 놓은 모든 길에 그림자를 드리운 시인이었고, ‘이 세상 최후의 시인’(앙드레 브르통)이었다.

그는 로마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칸 니스 모나코 등지를 떠돌다 19세 때인 1899년 파리에 정착했고, 그 5년 뒤 파리 북부 몽마르트르 언덕에 군락(群落)을 이루었던 무정부주의자들의 대열에 합류한다.

그는 여기서 피카소의 소개로 운명의 여인 마리 로랑생을 만난다. 첫눈에 반한 그는 신음을 토했다. “더는 사랑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는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돼 있던 ‘모나리자’ 도난사건에 연루돼 일주일간 투옥되면서 끝내 로랑생과 헤어지고 만다.

아폴리네르의 생애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사랑의 실루엣! 그것은 그의 시의 내재율이 되었고, 시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난 뒤 그 상처를 핥아주었다.

그의 예술은 반란의 충동에 이끌렸다. 첫 시집 ‘알코올’에서는 모든 구두점을 빼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시집 ‘칼리그람’에서는 활자나 시구의 배치를 통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초유의 시각시를 선보인다.

그러나 그 어떤 파격과 실험에도 이 진정한 초현실주의자가 깃들 현실 공간은 없었다. “무게 없는 인생을 나는 얼마나 자주 손으로 달아 보았던가….”

에로티시즘은 초현실주의의 강력한 무기라고 했던가. 시인은 틈틈이 에로소설을 써서 생계를 연명한다. 사드에 경도됐던 그는 성도착에 집착했다. 항문 숭배자였다. 그의 소설 ‘1만 1000번의 채찍질’은 사드가 침을 뱉고 돌아설 정도다.

“사람들이 결코 건드리지 못한 것/난 그걸 건드렸고 그걸 말했네/아무도 그것에서 상상하지 못하는 것/난 그 모든 걸 캐냈네.”

1918년 스페인독감에 걸려 숨졌으니 그의 나이 서른여덟, 결혼한 지 6개월 만이었다.

“오! 가을 가을이 여름을 죽였다/안개 속을 지나간다 잿빛 실루엣이 둘….”(‘가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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