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누가 정말 ‘기억상실증’에 걸렸나

  • 입력 2005년 10월 25일 0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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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홍보처가 천정배 법무부장관의 ‘검찰 지휘권 행사 파동’을 보도한 본보를 비롯한 몇 신문에 대해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비난했다. 중국산 인삼을 국산으로 속여 판 상인 17명 가운데 13명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것과 관련해 ‘수사 및 형사재판에서 불구속 원칙’을 강조한 2월 14일자 본보 사설을 거론한 뒤 ‘천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것도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불구속 수사원칙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정홍보처는 사안의 핵심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이번 파동의 본질은 천 장관이 지휘권 발동을 통해 정치권의 간섭을 대행함으로써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점이다. 국정홍보처는 본보가 불구속 원칙을 강조하다 말을 바꿨다고 비난했으나 본보는 불구속 원칙을 부정한 적이 없다. ‘인신 구속에 대한 최종 판단은 경찰 검찰이나 법무부가 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의 고유 권한’이라고 지적한 10월 15일자 사설을 말 바꾸기라고 한다면 악의적 오독(誤讀)이다.

오히려 정치적 입지에 따라 소신을 뒤집은 천 장관과 국정홍보처의 기억상실증이야말로 심각한 문제다. 천 장관은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을 지휘 감독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1996년), “(강금실 당시 법무부장관에게) 검찰총장에 독립적 수사를 하도록 독려할 용의가 없느냐”(2003년)고 발언했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 역시 신문기자시절 논술의 중요성을 강조하더니 정부에 참여한 뒤 “논술로 혜택 보는 사람은 투기로 이익 보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강남권 일부 소수 계층일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러니 참여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집권층의 도덕성이 의심받는 것이다.

천 장관은 “검찰이 인권옹호 기관으로서 헌법과 법률의 정신을 최대한 구현하도록 하기 위해 지휘권을 발동했다”고 주장했다. 정부여당이 일제히 나서서 ‘헌법정신’을 구현하도록 한 대상이 왜 하필 ‘만경대 정신’을 강조한 강정구 교수인지, 노 정권은 기억을 잃기 전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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