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홍재]‘어른들 말씀’에 뒤를 돌아봅니다

  • 입력 2005년 10월 22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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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님, 강원용 목사님, 그리고 김용준 이인호 선생님의 말씀을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뵈었습니다.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과 검찰총장 사퇴로 혼미를 더해 가는 한국호,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시는 말씀은 구절구절 가슴에 맺혔습니다. 특히 ‘386세대가 제일 큰 희생자다’라는 말씀, ‘현 정부를 비판하기에 앞서 전 정권들을 나무라고 싶다’는 말씀은 386의 한 사람으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에 몸담기도 했던 저에게 위안이자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요즘 강정구 교수의 발언은 1980년대에 주조된 이야기의 뒤늦은 표출에 불과합니다. 5·18 민주화운동을 전후로 군사체제에 학생들이 저항하며 이념의 무기로 선택한 마르크스주의, 김일성주의에 다 담겨 있던 내용들입니다. 그때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습니다.

아니, 꺼내지 못했다기보다 꺼내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습니다. 법정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우리를 지지했던 시민들이나 심지어 학우들에게도 ‘우리의 이념은 마르크스주의이거나 김일성주의이고, 6·25전쟁은 조국 해방, 조국 통일 전쟁이었으며 미국은 우리의 원수’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민주화 세력과 구분되어 탄압에 직면함은 물론 가장 가까운 학우들에게마저 고립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견해는 학습모임이나 지하 팸플릿을 통해 비밀스럽게 소통되었습니다. 많은 학우는 자기희생적인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과 민주화에 대한 공감으로 이러한 생각에 우호적인 견해를 굳혀 갔습니다.

이것은 선생님들의 말씀대로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자기 분열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시장경제의 성과를 향유하면서 그를 부정하는 태도도 그러하고, 인권과 민주화 세력임을 자임하면서 전무후무한 북한의 독재자에 대해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인류의 노력을 가로막는 모습도 자기 분열적입니다. 이와 같은 자기 분열은 극복되어야 할 386세대의 부정적인 모습입니다.

저는 강 교수에 대해 ‘차라리 고마운 분’이라고 표현합니다. 자기 분열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개인이나 특정한 세대가 자신들의 특수한 경험하에서 쌓아 올린 인식이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침묵되기보다 공론화되어 스스로 그 생각을 요모조모 돌이켜 봐야 합니다.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 경도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는 정치권 386세대의 애매한 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생각의 어디가 어떻게 경도되었는지를 분명히 고백하고 반성해야 자기 분열 극복 작업을 끝낼 수 있습니다. 강 교수의 발언은 그래서 우리 세대가 공론의 장에서 과거에 쌓아 올린 생각에 대한 돌아보는 기회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의 생각이 어디가 과도한지, 어떻게 현실과 맞지 않는지를 조목조목 검토하는 것을 통해 우리 세대, 역사 인식의 균형을 잡아 낼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것이 매우 힘들고 지난하더라도 그것 외에는 다른 정도(正道)가 없어 보입니다.

세월이 흘러 후대들은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 세대에게 ‘위대했다’라는 표현을 헌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세대! 우리 민족사 전 기간에 걸쳐 이렇게 눈부신 발전과 성취를 이뤄 낸 세대는 없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 우리의 ‘386’들도 자랑스럽게 기록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혁신해야 합니다. ‘군사체제의 피해자 386세대’를 따뜻하게 바라보시는 선생님들, 민주화의 길에 힘이 되어 주셨던 우리 사회의 어르신들의 말씀은 우리의 돌아봄과 혁신에 큰 격려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졸고를 선생님들과 저희 동료들에게 바칩니다.

최홍재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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