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차수]어느 역사학자의 후회

  • 입력 2005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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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이념 논쟁을 보면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사태가 오리라는 것을 1980년대 말에 이미 예견했지만 용기가 없어 침묵했다.”

한 중진 역사학자가 털어놓은 얘기다. 그의 고백은 이어졌다.

“1980년대 이후 젊은 역사학도 대부분은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에 경도돼 있다. 그런데도 많은 역사학자가 편향의 위험성을 못 본 체한 것은 제자들이 민주화 투쟁에 기여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 역사학뿐 아니라 정치학 사회학계에서도 사회구성체 논쟁 등 좌파적 시각을 갖고 연구한 사람이 많다. 더욱이 일부 운동권 학생은 주사파로 빠져들어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을 외쳤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좌파 성향의 역사 인식을 갖고 있는 386세대와 학자들이 대거 정권 핵심에 진입했다. 학계에서도 역사 인식이 비슷한 사람들이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은 평등주의와 분배, 민족 공조를 강조하고 있고 현 정부는 이런 정책 기조를 지지하고 있다.

지배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는 데 지식인들이 앞장서는 것은 과거 격변기에도 흔히 있던 일이다. 조선 개국 공신 정도전은 고려의 지배이념인 불교를 버리고 성리학을 건국이념으로 확립했다. 다산 정약용은 성리학 관념론의 폐해와 당쟁으로 총체적 위기에 빠진 조선을 구하기 위해 실학을 집대성했다.

하지만 정도전은 살해됐고 정약용은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다. 두 사람은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올바로 제시했지만 생애는 평탄치 않았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는 ‘맥아더는 집달리’ ‘6·25는 통일전쟁’ 등의 발언으로 사법처리 대상이 되자 통일 기반 조성에 앞장섰다가 색깔론의 희생양이 된 것처럼 반박했다. 지배 이데올로기를 제시하고도 곤욕을 치렀던 선조들처럼 자신이 탄압받고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는 듯하다.

그러나 강 교수의 통일지상주의를 비판하는 학자가 많다. 북한체제는 세습 지배와 주민의 굶주림 등을 볼 때 실패했음이 분명히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권 핵심뿐 아니라 진보를 자처하는 좌파 지식인들이 ‘강정구 살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좌파 지식인들은 민족 모순인 분단 해결이 가장 시급한 역사적 과제이며 이를 위해 사상과 학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정권 쟁취를 위해 20여 년간 투쟁하면서 쌓아 온 노하우와 연대의식 때문인지 좌파 지식인들의 강 교수 지원은 집요하고도 치밀하다.

반면 보수 진영의 강 교수 비판은 산발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른말을 하는 지식인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건국대 이주영 교수는 ‘민중사학’ ‘통일사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한 논문을 발표했다.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와 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진보 지식인들의 위선적 행태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뉴라이트 진영의 젊은 학자들도 좌파 지식인들의 역사 인식 오류와 잘못된 행태에 맞서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이념 갈등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식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새로운 후회를 되풀이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다.

김차수 문화부장 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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