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폴 크루그먼]임금삭감에 사라지는 美중산층

  • 입력 2005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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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의 자회사였던 부품회사 델파이가 독립회사로 분리된 게 1999년이다. 최근 그 델파이가 파산을 신청했다. 델파이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밀러 씨는 근로자들이 시간당 평균임금을 27달러에서 10달러 수준으로 삭감당하는 데 동의해 주길 바라고 있다.

델파이, 나아가 자동차산업 전반이 어쩌다 이런 상황에 왔는지에 대해선 많은 의문이 있다. 근로자에겐 임금 삭감을 요구하면서도 왜 경영진엔 엄청난 퇴직 혜택을 주는가? GM의 수익이 괜찮던 시절 왜 상당한 배당금을 지급하면서도 근로자 연금을 보전할 돈은 내놓지 않았던가?

델파이의 파산은 일반적인 기업 도산이나 나쁜 자기거래 케이스보다 훨씬 중요한 사안이다. 만약 델파이가 임금을 깎고 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나머지 자동차산업도 같은 길을 가게 될 공산이 크다. 이는 미국의 보통 근로자들이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시대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 될 것이다.

한때 미국에는 좋은 일자리가 많은 시절이 있었다. 근로자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진 않았지만 중산층은 되게 해 주었다. 그런 일자리 중 최고는 미국의 거대 제조회사, 특히 자동차산업이었다. 그러나 미국 근로자들이 경제성장의 혜택을 함께 나눈 이래 한 세대가 지났다. 미국은 30년 전보다 훨씬 부유한 나라가 됐지만, 근로자의 시간당 급료는 같은 기간 인플레를 겨우 따라가는 수준이었다.

늘어난 국부와 침체된 임금이라는 대조적 상황은 최근 더욱 극심해졌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뉴욕 증권가는 2004년을 경제부흥의 해로 기록했지만, 남성 근로자의 평균 실질소득은 2% 이상 떨어졌다.

좋은 시절의 유산들은 이제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도처에서 기업들은 임금과 수익을 쥐어짜며 세계적 경쟁 앞에서 어쩔 수 없다고 얘기한다. 이런 ‘쥐어짜기’는 자동차산업에까지 도달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1990년대 낙관론자들은 더 나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경제력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델파이의 밀러 씨는 임금 삭감을 추진하며 이런 주장을 폈다. “이제 세상은 지식근로자가 육체, 산업노동자보다 훨씬 대접받는 사회가 됐다”고.

그건 1999년의 답이었다. ‘거품경제’ 기간에는 지식근로자가 좋은 일자리를 보장받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거품이 꺼졌을 때 지식근로자 역시 생산라인의 근로자만큼이나 조직 축소와 정리해고에 취약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날아가 버린 많은 고임금 직장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중 일부는 인도나 다른 국가에 아웃소싱된 탓도 있다.

혹자는 미국의 의료보험체계가 임금에 미치는 악영향을 강조하곤 한다. 자동차회사들이 직면한 큰 고민이 전현직 근로자 모두에게 제공하는 의료보험 비용이다. 만약 캐나다 방식의 의료보험체계를 도입한다면 그런 쥐어짜기는 당분간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교육이든 의료보험 개혁이든 임금 쥐어짜기를 멈추기에 충분치 않다면? 필자 같은 자유무역주의자가 걱정하는 대목이다. 보호무역주의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경영진이 외국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임금을 깎아야 한다고 얘기하면 근로자들은 차라리 경쟁을 차단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을 것이다.

부디 그 길로 가지 않길 바란다. 그러나 싫다고 거절하는 것은 선택이 될 수 없다. 미국의 근로 중산층은 한 세대 동안 침식돼 왔고, 완전히 쓸려 없어질 수도 있다. 뭔가를 해야만 하는 시점이다.

정리=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폴 크루그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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