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589>卷六.동트기 전

  • 입력 2005년 10월 18일 03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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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때 한왕 유방은 형양성을 에워싸고 마지막으로 불같은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패왕이 돌아온다는 소문이 있어 그 전에 형양성을 떨어뜨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종리매도 무얼 믿고 그러는지 조금도 흔들림 없이 성을 지켜냈다.

연이틀 공성으로 적지 않은 군사만 잃은 한왕은 잠시 군사를 형양성 동쪽으로 물린 뒤에 장량과 진평을 불러 걱정했다.

“아무리 전군을 몰아 들이쳐도 형양성이 끄덕도 않으니 큰일이오. 게다가 항왕이 돌아오고 있다는 소문이 있으니 실로 걱정이오.”

“아무리 항왕이라 할지라도 수백 리에 펼쳐진 여남은 성을 보름 만에 평정하고 돌아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항왕이 성고를 떠날 때 조구에게 친 허풍이 씨가 되어 생겨난 헛소문임에 틀림없습니다.”

진평이 그렇게 한왕을 위로했다. 그러나 장량은 진평과 생각이 다른 듯했다.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날 장하(장河)를 건널 때, 군사들에게 솥과 시루를 깨고 사흘치 군량만을 지닌 채 달려가게 해 거록(鉅鹿)을 구해낸 항왕입니다. 거기다가 팽월은 항왕의 그림자만 보고도 자취 없이 달아나 버리니 보름이면 양(梁) 땅의 여남은 성쯤은 쓸어버리고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마땅히 그때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때 마치 그런 장량을 편들기라도 하듯 탐마(探馬)로 나갔던 군사 하나가 달려와 알렸다.

“아룁니다. 항왕의 대군이 어제 아침 곡우를 떠났다고 합니다.”

“뭐 벌써 곡우를 지났다고?”

패왕 항우의 무서운 속도와 집중력을 잘 알고 있는 한왕이 허옇게 질린 얼굴로 그렇게 받았다. 장량의 낯빛도 더욱 어두워졌다.

“항왕이 마음먹고 군사들을 몰아쳤다면 벌써 이 부근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어서 대책을 세우셔야 합니다.”

장량이 그렇게 말하자 유방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장졸들과 함께 잠시 서쪽으로 물러나는 것이 어떻소? 관중으로 돌아가 쉬면서 항왕의 예봉을 피한 뒤에 다시 나와 싸워 보는 것도 한 방책일 것이오.”

“그건 아니 됩니다. 만약 종리매가 성을 뛰쳐나와 우리 앞길을 막고 그 뒤를 항왕의 대군이 들이치면 그야말로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칫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격이 되고 맙니다.”

이번에는 진평이 정색을 하고 나서 그렇게 말했다. 장량도 진평을 거들어 말했다.

“대왕께서는 벌써 역((력,역))선생 이기(食其)의 말을 잊으셨습니까? 무릇 임금 노릇 하려는 자는 백성을 하늘로 알고, 백성들은 먹을 것을 하늘로 안다 하였습니다. 오창은 물과 뭍으로 천하의 곡식이 모였다 나뉘는 곳이니, 바로 백성들의 하늘이 있는 곳입니다. 또 성고와 형양은 오창과 더불어 관동을 경영하는 든든한 발판이라 결코 잃을 수 없는 땅입니다. 이번에 이 땅을 버리고 관중으로 물러나시면 다시는 되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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