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묵]상처 받은 젊음을 위해

  • 입력 2005년 10월 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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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의 일이다.

복무하던 부대가 다소 험한 곳이어서 그랬는지 동료 부대원이 무장 탈영을 한 적이 있었다. 결혼을 한 친구였는데 아내에게 무슨 문제가 생겨 탈영한 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여관에 들어가 난동을 부렸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경호경비 근무를 서던 중이었다. 수도 한복판에서 시민들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자동소총을 쏴 댔으니 꽤나 시끄러웠던 사건이다.

동료 부대원을 ‘제거’하기 위해 현장에 투입된 기자는 자살극으로 막을 내린 끔찍한 현장을 본 후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별로 유쾌하지 못한 기억을 새삼 떠올리는 것은 경기 연천군 ‘최전방 감시소초(GP) 총기난사 사건’을 보면서 느낀 ‘동병상련’ 때문이다.

사건 발생일이 6월 19일이니 어느덧 넉 달째에 접어든다.

최근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여러 후속 대책이 시행되는 모양이다. 입대 동기생들로만 이뤄진 부대를 운영한다거나, 병사들이 간섭 없이 자유롭게 쉴 수 있는 ‘그린존’을 만든다거나 하는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

이런 노력들이 병영문화를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병사들의 마음속 깊은 ‘내상(內傷)’까지 아물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바로 몇 시간 전까지 함께 부대꼈던 동료들이 찢겨진 시신으로 변한 모습을 본 병사들로서는 평생 응어리를 가슴속에 안고 살 수밖에 없다.

사건 직후 다른 부대로 전출된 생존 병사 15명 중 7명이 아직 복무 중이다. 이들은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숨진 동료들이 꿈에 나타나 잠을 제대로 못 이루거나, 우울증에 시달려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거꾸로 매달려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지만 이 병사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정말로 견디기 힘든 시간일 것이다. 이들이 선택한 일도 아니다.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희생된 장병들과 마찬가지로 피해자다.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기 위해 이들을 조기에 제대시킬 것을 제안하고 싶다.

조기 제대 조건은 무척 까다롭다. 의병 제대는 신체등위 6급 판정을 받아야 하고, 의가사 제대는 집안이 망한다 해도 피부양자가 2명 이상 있어야 한다. 철저한 국민개병제를 시행하고 있는 현실에서 엄격한 절차는 불가피하다. 병역 의무의 신성함과 안정성을 해친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예술인과 체육인 연구원 등이 병역 면제 혜택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월드컵 축구에서 16강에 오른 선수들도 포함되도록 법을 고쳤다. 면제 요건의 경중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례없이 참혹한 병영 사고를 당한 병사들에게 면제 혜택을 주자는 것이 무리한 주장일까.

규정상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병역법 시행령 제137조는 심신 장애가 생겼을 경우 심사를 거쳐 제2국민역(면제)에 편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인 고통을 ‘심신 장애’로만 인정한다면 조기 제대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것이 국가의 부름을 받았다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젊은 날의 초상들’을 그나마 위로해 주는 길이 아닐는지….

최영묵 사회부장 ym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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