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우룡]‘KBS 혁신’ NHK-BBC에 답이 있다

  • 입력 2005년 10월 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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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은 기술 혁신을 촉발하고 경영을 합리화해서 생산성을 높인다. 비용의 절감은 상품의 질을 높이고 가격을 내린다. 이것이 바로 시장경제의 원리다. 그러나 텔레비전 시장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매체가 늘어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른바 ‘탤런트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전반적인 출연료 앙등으로 이어져 고비용이 구조화된다. 반면 시청률 압박이 커지면서 말초적인 저질 프로그램이 범람한다. 제작비는 비싸지는데도 질은 떨어지는 아이러니다.

지금 우리나라 방송 구조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출연료 거품이 방송사 경영을 압박하고 매체의 증가는 닮은꼴 프로그램을 양산한다. 텔레비전이 ‘불륜의 바다’, 시시껄렁한 ‘연예인 놀이터’처럼 된 지 오래다.

핵심이 빠진 KBS의 껍데기 개혁안이 도마 위에 올랐다. 모처럼 KBS 이사회와 감사실이 부실한 경영과 표류하는 기간방송의 문제점을 적시하고 나선 것이다. “영국의 BBC, 일본의 NHK와 같이 과감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KBS가 제시한 개혁 방안은 본부를 센터로 개편하고, 2010년까지 신규 채용을 억제하며, 인건비 비중을 현 36%에서 30% 수준으로 낮춘다는 등 백화점식 나열로 매우 피상적이다. 게다가 결손 보전을 위한 수신료 인상, 물가 연동제 도입, 중간광고 허용 등은 사내에서조차 비판을 받고 있다. 신규 채용의 억제는 조직 체계를 가분수로 만들기 쉽다. 가상광고, 간접광고를 통한 수익 창출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반공영적이다.

정연주 KBS 사장은 4일 국정감사 자리에서 텔레비전 수상기뿐 아니라 방송 시청이 가능한 개인용 컴퓨터와 차량용 TV모니터 등에도 수신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선진국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KBS의 공영성도 선진국 수준인가.

BBC나 NHK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BBC는 2008년까지 2만8000명의 사원 중 6000명을 줄이고 15%의 예산을 절감할 예정이다. 쇼 연예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TV, 라디오, 온라인 서비스의 질 개선에 집중 투자할 방침이다. 게다가 더욱 효율적인 조직 운영, 디지털 기술 도전, 콘텐츠 개발에 주력하기로 했다.

NHK는 2006년부터 전체 직원 1만2000명 가운데 10%인 1200명을 감축하기로 했다. 올해 총 경비 중 500억 엔을 삭감하고 전 사원의 임금을 줄인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디지털 시대의 사업 다각화, 위성방송 등을 통한 새로운 재원 발굴, 사원의 도덕성과 전문성 향상 등 새로운 경영 비전을 내세우고 있다. 이른바 ‘신생 플랜’으로 그 핵심은 NHK의 신뢰 회복이다. 직원들의 제작비 횡령, 출장비 과다 청구, 시청료 착복 등 도덕적 해이를 보여 주는 사건이 잇따라 터진 데다 올 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에 대한 정계 실력자의 압력이 폭로되면서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KBS의 감사보고서는 무리한 예산 편성, 비용 절감 노력의 미흡, 높은 임금 인상률 등을 적자 요인으로 꼽았다. 또 이 보고서는 ‘미디어포커스’ 등 일부 진보 성향의 프로그램이 국민의 신뢰를 잃게 했다고 밝혔다. 사실 ‘진보’라기보다는 ‘편향’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KBS는 공신력 회복에 힘써야 한다. “특정 집단의 입장을 대변하게 되면 공영방송의 존립 근거를 위협하게 된다”고 스스로 진단하지 않았던가. 공영방송은 결코 정권 유지의 버팀목이나 정책 홍보의 나팔수가 아니다.

둘째, 재원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KBS는 재원의 60% 이상이 광고에서 나온다. 광고주의 압력을 피하기 어렵다. 공영방송의 첫째 조건은 비상업방송이어야 한다.

셋째, BBC와 NHK가 가장 주력해 온 분야가 국제방송과 교육방송이다. KBS 스스로 방송 구조 개편에 나서야 한다.

넷째, 고비용의 주범인 드라마,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과감히 축소해야 한다. 대신 공영성 높은 공공, 시사, 교육, 국제, 교양, 문화, 예술, 정보 프로그램을 확충해야 한다.

다섯째, 투자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위성방송과 이동방송에 대한 막대한 출자는 부실경영의 한 원인이기도 했다.

이제 국민은 ‘새로운 KBS’를 보고 싶다.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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