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이연]‘인생 즐기라’는 아버지의 충고

  • 입력 2005년 10월 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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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는 튀어야 한다. 요즘처럼 강한 자극에 익숙한 현대인들한테는 어지간해선 튀지 못한다. 심지어 자기를 알리기 위해서인지 TV 생방송 중에 바지를 내리는 사람도 있는 세상이니.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로 시작하는 CM송이 깔리면서 나오는 그 광고는 성공했다. 그 광고를 본 사람들은 누구든 한마디씩 주고받을 말이 생겼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것 어법이 맞는 거냐”고 까다로운 친구가 따진다. ‘말하셨지’가 아니라 ‘말씀하셨지’라고. 한 친구는 “노래의 가사니까 그냥 넘어가자”라고 했다. ‘말하셨지’가 의미하는 것처럼 이 광고 속의 아버지는 이미 위엄을 내세우는 아버지가 아니라 인생의 선배쯤으로, 아니면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동료쯤으로 모습을 바꾼 것이 아닐까.

이 광고는 여러 가지로 요즘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어중간한 나이에 직장에서 밀려나 기운 빠져 있기 쉬운 ‘아버지’와 사회 경제적으로 말썽 많은 결제수단 ‘신용카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키워드로 썼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엄숙과 권위, 근면과 절제의 기성세대를 상징해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러기 아빠의 허전함이나 노숙하는 떠돌이 가장의 가슴 찡한 슬픔에 대한 얘기가 자주 들리면서 ‘초라한 아버지’의 이미지가 중첩되고 있다. 그런데 이 광고에서처럼 “인생을 즐기라”는 충고를 할 수 있는 아버지는 둘 다 아닌 것 같다. 자신 있고 당당하면서도 친근한 모습이랄까. 전혀 새로운 아버지상이다.

이 광고는 또 탈산업사회에 인생관의 변화를 보여 주는 한 징표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래에 집착해 오늘을 함부로 다루지 말라는 것. 우리가 오늘을 한 번만 사는 것처럼, 인생의 모든 날을 그렇게 사는 것이라는 사고방식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씨는 그의 저서에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여가를 어떻게 즐기는가에 달렸다고 말한다. 여기서도 즐긴다는 말이 나온다. “춤추고 마시고 달리고”가 아니다. 즐긴다는 말에는 몰입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몰입을 요구하는 즐거움을 찾아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어로 여가는 스콜레(scole)이며 이것이 학교(school)나 학자(scholar)의 어원이 되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이렇게 진정한 즐기기라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충고로 충분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강퍅함 때문인지 ‘그 아버지는 과연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아들의 카드빚을 갚아 줄 수도 있는지’ 따위의 칙칙한 의문도 든다. 혹 모든 것을 포기한 아버지의 쓰디쓴 외침은 아닐까, 하얗게 태워 버리지 못하고 검은 찌꺼기로 남은 아버지의 모습은 아닐까 하는….

사실 현실은 힘들고 암울하며 개인은 고립돼 있다. 많은 젊은이가 카드빚을 못 갚아 신용불량자가 되고 심지어 범죄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이 노래가 고달픈 현실에 대한 반어적 저항으로 들릴 수 있고, 그래서 반향이 클 수도 있다. 현실은 벗어날 수 없는데 노래만이라도 시원하게 불러 볼거나.

고된 농사일에 먹을 것도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 김치 한 조각에 막걸리 마시고 취해 춤추며 부르던 노랫가락이 있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

마찬가지로 아직도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연봉 많은 직장을 가져야 하는 험한 현실을 잠시 노래로라도 벗어나 보자는 생각일 것이다. 이제 겨우 입시와 취직시험에서 벗어나 직장이라는 걸 가졌는데 또 20대 후반부터 노후준비를 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생각해 보면 산다는 것이 젊은이들을 너무 지치게 한다. 이런 시대를 살게 해서 미안하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를 아들은 앞으로도 죽 사랑할까.

김이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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