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충훈]돈없는 지자체에 선거비용 떠넘겨서야

  • 입력 2005년 9월 2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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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가(分家)에도 상식이 있다. 무작정 집 밖으로 내몰지는 않는다. 식솔을 거느릴 만한 능력이 있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예전엔 논과 밭을 떼어 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지방자치 10년도 분가의 역사에 비유된다. 지방자치는 시행 초기의 바람과는 달리 더딘 진행 속도를 보이고 있다. 지방의 자율능력 부재도 중요한 원인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권한과 재정 이양’이라는 분가 조건이 여전히 충족되지 않고 있다. 특히 재정의 불균형이 발목을 잡는다. 중앙정부는 지방자치 발전을 주문하면서도 재원의 분배를 외면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 비용을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라’는 중앙정부의 요구에 전국의 지자체장들이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 불가피한 일이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 대 2인 수준에서 막대한 선거공영제 예산은 도저히 짜낼 수가 없다. 정부가 요구하는 지방선거 비용이 무려 8300억 원이다. 게다가 국회가 지방의원 유급화를 입법화함으로써 지방정부에 추가로 2200억 원의 예산을 요구하고 있다.

솔직히 전국 지자체의 형편을 살펴보면 지방자치시대라는 게 허울뿐이다. 재정자립도 50% 이하의 지자체가 9할이며 공무원 봉급도 줄 수 없을 만큼 열악한 곳도 30%나 된다. 도대체 무슨 수로 갑작스레 1조 원이 넘는 예산을 편성할 수 있겠는가. 이는 나머지 사업을 포기하라는 말과 다름없다. 또 이런 일방적인 통보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성장에 역행한다.

지방분권과 자치는 적어도 현재의 조세제도를 그대로 두고는 성립되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의 지방세 비율이 40% 수준이고 독일은 50%에 육박하고 있다. 지방세 비율을 상향조정하는 게 절실하다.

선거공영제라는 명분을 내세워 지방선거 비용 분담을 요구하는 처사는 근근이 먹고사는 가난한 집에 보약을 강매하려는 것과 같다. 보약 좋은 걸 누가 모를까. 하지만 쌀과 김치도 바닥이 날 지경인데 천하 명약인 불로초를 무슨 수로 사겠는가. 정부와 정치권은 자치단체의 ‘빈 쌀독’부터 채워줘야 한다.

조충훈 전국 시장 군수 구청장협의회 사무총장 전남 순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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