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고기정]국민이 세금정책 실험대상인가

  • 입력 2005년 9월 2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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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1부동산종합대책’ 발표를 3일 앞둔 지난달 28일.

재정경제부와 건설교통부 등 각 부처 실무자들이 정부과천청사 인근 호텔에 모였다. 8·31대책 발표문을 최종 조율하는 비공개 회의였다.

“이러면 사람들이 안 놀란다니까요. 좀 다르게 해봐요”라는 말이 문틈으로 흘러나왔다.

사흘 뒤 8·31대책이 발표되자 정부 의도대로 국민들은 적잖이 놀랐다.

내 집 하나 달랑 있는 중산층도 2017년까지 보유세가 집값의 1%로 오른다고 하자 불안감을 느꼈다. 4억 원짜리 아파트를 갖고 있다면 1년에 400만 원을 세금으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서민들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보유세 실효세율 1%의 근거가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본보가 미국과 유럽 각국의 세제를 분석한 결과 ‘선진국은 보유세 실효세율 1%’라는 정부의 주장은 근거가 없었다.

본보 보도 이후 정치권도 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21일 주택 보유세 1% 목표를 철회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올해 5·4 부동산 대책에서 2017년까지 모든 부동산의 보유세를 1%로 높이겠다고 한 발표를 포기한 것이다.

재경부 관계자들은 그러면서 8·31대책에서는 서민 주택의 보유세를 1%로 높이겠다고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세금을 매기는 기준 금액을 현재 기준시가의 50%에서 100%로 높이겠다고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해명대로 정부가 8·31대책 이전에 이미 1%를 철회했는지 아니면 논란이 커지자 철회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5·4대책 발표 이후 보유세 1% 목표 포기를 밝힌 적이 없다는 점이다. 언론이 서민 부담 증가를 지적하면 마치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처럼 몰아붙였을 뿐 딱 부러진 설명을 한 적도 없다.

결국 8·31대책 발표 3주일이 지나서야 정부는 포기를 선언했다.

그 사이 언론은 세금 부담 증가를 경고했고, 이에 놀란 국민들은 집을 팔아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했다. 정부는 이런 혼돈을 방관한 셈이다.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국민에게 이해와 설득을 구하는 게 먼저다. 충격 요법으로는 장기적인 효과를 거둘 수 없다. 국민은 정책 고객이지 실험 대상이 아니다.

고기정 경제부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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