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진현]의료서비스, 시장에 맡기기엔 시기상조

  • 입력 2005년 6월 24일 06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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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의료보험과 영리병원 도입 문제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다. 민간 보험사와 의료계, 경제부처는 이를 지지하고 건강보험공단과 복지부는 반대 입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객관적 근거 없이 의료서비스산업 활성화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경제부처가 총대를 메고 ‘다걸기(올인)’하고 있고 여기에 민간 보험회사와 의료계가 적극 가세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통령의 판단에는 문제가 있다. 의료산업에는 제약과 의료기기 산업, 의료서비스 등이 있다. 제약과 의료기기는 부가가치가 높고 수출전략품목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으므로 시장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선진국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약이나 의료기기로 돈을 번 기업은 있어도 의료서비스로 경제를 부흥시킨 나라는 없다. 의료서비스는 건강보험제도의 핵심 요소로 이를 시장에 맡긴다는 것은 국가보건정책의 포기를 의미한다. 민간 의료보험과 영리병원에 국민의 건강을 맡기는 나라는 거의 없다. 보건의료의 특성상 발생하는 시장실패 때문이다.

영리병원과 민간 의료보험 논의를 주도하는 집단은 경제부처들이다. 이들은 무엇을 시장에 맡기고 무엇을 정부가 해야 할지 분간을 못하고 있다. 이들의 상당수는 미국 유학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들이 경험한 것은 예외적인 제도이지 보편적인 제도가 아니다. 미국이 세계의 표준은 아니다. 의료서비스를 시장에 맡긴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에서 미국이 유일하고 한국이 그 뒤를 따라가고 있다.

선진국에서 민간 의료보험이 의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부분 4% 미만이고 그것도 공공 의료보험에 악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다. 병원이 비영리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이들 국가에서 의약품산업이나 의료기기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영리병원이 되면 당장 외화를 크게 벌어들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국민의 건강을 내팽개친 채 남의 나라 돈을 벌면 도대체 얼마나 벌겠다는 것인가.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돈벌이에도 최소한의 윤리가 있어야 한다. 국민이 의지하는 의료제도를 뿌리째 흔들어서야 어디 기업가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선진국이 지난 50여 년간 경험한 바에 의하면 공공의료제도하에서 의료비가 더 적게 들고, 가난한 환자도 치료비 걱정 없이 병원을 이용할 수 있으며, 국민의 건강상태도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민간 의료의 비중이 높은 국가는 고비용, 저효율, 불공평이라는 문제에 처해 있다.

영리병원, 민간보험으로 환자의 선택권을 넓히고 경쟁으로 질을 높인다고 하지만 선진국의 경험을 보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시장 실패의 상황에서 경쟁의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다.

효과가 불확실한 것을 위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를 수는 없지 않은가. 공공의료가 선진국 수준으로 성장하고 난 뒤에 민간 의료보험과 영리병원을 허용해도 늦지 않다. 사회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아쉽다.

김진현 인제대교수·보건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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