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21세기식 결혼

  • 입력 2005년 4월 11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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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 영화 ‘중경삼림’ 속의 독백이다. 지난 주말 오랜 애인과 결혼식을 올린 영국의 찰스 왕세자에게 사랑의 유효기간은 4월 현재 35년이다. 미국 코넬대 심리학자인 신시아 하잔 교수가 밝혀낸 열정적 사랑의 유효기간 18∼30개월을 훌쩍 뛰어넘는다. “당신의 탐폰(여성용품)이 되고 싶다”던 찰스의 은밀한 고백이 폭로된 지 13년 만의 결실이었다.

▷‘왕자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나, 결혼식 땐 오동포동했는데 나이 들수록 슬픈 성숙미를 내비치던 다이애나 비를 기억하는 이들은 환상이 깨지는 것처럼 불편했을지 모른다. 각기 다른 배우자와 결혼, 추문, 불륜, 사별 후 50대 후반에 이혼녀와 재혼이라니! 다소 괴팍한 성향 때문에 찰스 왕세자의 인기가 높지 않은 터라 아예 윌리엄 왕자에게 다음 왕위를 넘겨야 한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평균수명이 긴 시대를 만나 왕위 계승자 역할을 오래해야 한다는 건 왕세자로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덕에 ‘포스트 메너포즈(post menopause·폐경 후) 결혼’도 했으니 늙은 왕세자는 마침내 21세기 포스트모던 로맨틱 드라마의 왕자님이 된 셈이다. 평균수명이 남자 76세, 여자 81세인 고령화시대다. 이혼율이 1000명당 166.7명이나 되는 영국 사회에서 중년이든 황혼기든 혼자 살기에 20∼30년은 너무 길다.

▷‘사랑에 관해서’의 저자 헬렌 피셔 미국 럿거스대 교수는 사랑엔 세 종류가 있다고 했다. 마약중독 같은 욕정, 강박적으로 빠져드는 낭만적 사랑, 오래가는 애착이다. 이들 감정이 한 상대를 향해 나타나면 좋겠지만 동시에, 각기 다른 상대에 대해서도 생길 수 있어 문제다. 정서적 유대감으로 편안한 애착상태에서도 때론 참신한 일을 벌여 도파민을 분비시켜야 낭만적 사랑이 되살아난다. 하지만 세가지 사랑을 다 나눠도 결혼이 주는 행복만은 못했나 보다. 결혼이란 제도는 21세기에도 유효할 모양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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