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와 공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나, 결혼식 땐 오동포동했는데 나이 들수록 슬픈 성숙미를 내비치던 다이애나 비를 기억하는 이들은 환상이 깨지는 것처럼 불편했을지 모른다. 각기 다른 배우자와 결혼, 추문, 불륜, 사별 후 50대 후반에 이혼녀와 재혼이라니! 다소 괴팍한 성향 때문에 찰스 왕세자의 인기가 높지 않은 터라 아예 윌리엄 왕자에게 다음 왕위를 넘겨야 한다는 여론도 적지 않다.
▷평균수명이 긴 시대를 만나 왕위 계승자 역할을 오래해야 한다는 건 왕세자로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덕에 ‘포스트 메너포즈(post menopause·폐경 후) 결혼’도 했으니 늙은 왕세자는 마침내 21세기 포스트모던 로맨틱 드라마의 왕자님이 된 셈이다. 평균수명이 남자 76세, 여자 81세인 고령화시대다. 이혼율이 1000명당 166.7명이나 되는 영국 사회에서 중년이든 황혼기든 혼자 살기에 20∼30년은 너무 길다.
▷‘사랑에 관해서’의 저자 헬렌 피셔 미국 럿거스대 교수는 사랑엔 세 종류가 있다고 했다. 마약중독 같은 욕정, 강박적으로 빠져드는 낭만적 사랑, 오래가는 애착이다. 이들 감정이 한 상대를 향해 나타나면 좋겠지만 동시에, 각기 다른 상대에 대해서도 생길 수 있어 문제다. 정서적 유대감으로 편안한 애착상태에서도 때론 참신한 일을 벌여 도파민을 분비시켜야 낭만적 사랑이 되살아난다. 하지만 세가지 사랑을 다 나눠도 결혼이 주는 행복만은 못했나 보다. 결혼이란 제도는 21세기에도 유효할 모양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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