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많이 싸운’ 朴滿 검사의 사표

  • 입력 2005년 4월 11일 00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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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싸우면 검찰이 시끄러웠다. 혼자 싸울 때도 선배 검사들은 ‘많이’ 싸운다고 했다.

이름이 그랬다. 박만(朴滿·성남지청장) 검사. 그가 싸우면 ‘만이(많이) 싸우는’ 셈이 됐다.

실제로 그는 많이 싸웠다. 그는 솔직하다. 꾸미거나 합리화하는 것을 경멸한다. 그러니 사건과 이유를 꾸미려는 사람들과 늘 싸울 수밖에….

1993년 그가 경남 통영지청장으로 있을 때였다. 검찰 고위간부와 호형호제하던 A 씨가 걸려들었다. 국립공원인 해금강 물줄기를 틀어서 자신의 별장으로 흐르게 한 혐의였다. 명백한 구속 대상이었다.

상부에서는 불구속 수사를 하라고 했다. 박 지청장은 그렇게 못하겠다고 했다. A 씨는 결국 해외로 피했고 박 지청장은 다음 인사에서 지방검찰청 부장으로 좌천당했다. ‘많이 버틴’ 대가였다.

1999년 12월은 검찰 최악의 시기였다. ‘옷 로비 의혹 사건’이 검찰 간부들의 ‘거짓말’ 사건으로 변해 검찰 내부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

안팎에서 격렬한 진통이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수사를 지휘하던 이종왕(李鍾旺·현 삼성그룹 법무실장) 대검찰청 수사기획관이 사표를 내는 사태가 벌어졌다.

수사검사였던 박 검사는 잠적한 이 기획관을 이틀 만에 찾아내 따졌다. “나 같은 기회주의자도 버티는데 왜 사표를 내느냐”고.

이 기획관은 뜻을 접지 않았다. 박 검사도 뜻을 굽히지 않고 그 수사를 계속해 마무리 지었다.

2002년. 이번에는 그가 수사기획관이 되어 당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아들 홍업 씨 수사를 맡게 됐다. 그때도 그는 참 많이 싸웠다고 회고했었다.

1992년 ‘남한사회주의 노동자 동맹(사로맹)’ 사건의 주임검사였던 박 검사는 수사 도중 주범이었던 백태웅(白泰雄) 전경희(全慶姬) 씨가 혼인신고를 하도록 배려했다.

부부 중 한 명은 선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박 검사는 이 소식이 미리 알려지는 바람에 상부로부터 호된 질책을 당했다.

필자가 일주일간의 해외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박 검사가 사표를 냈다고 한다. 4일 발표된 검사장 승진 인사에서 탈락한 직후 사표를 냈다는 것이다.

검사들은 그가 탈락한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다고 한다. 재독학자 송두율(宋斗律) 씨 수사를 지휘하면서 ‘많이 싸운’ 것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김종빈(金鍾彬) 검찰총장은 그를 누구보다 잘 안다. 김 총장은 지난해 승진인사에서 탈락한 박 검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절대로 사표를 내지 말라”며 “다음을 기약하자”고 했었다. 김승규(金昇圭) 법무부 장관도 그를 승진 대상으로 고려했다고 한다.

그러면 박 검사의 탈락은 누구의 뜻이었을까.

이번 인사는 잠시 잊고 지냈던 씁쓸한 ‘세상사’를 다시 일깨워 준다.

권력에 맞서 싸우는 검사가 결국 어떻게 되는지를….

이수형 사회부 차장 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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