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의 東北亞]<上>불안한 세력균형

  • 입력 2005년 3월 29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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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의 국제정치 지형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 일본 간 동맹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수준의 결속을 보이면서 중국과의 사이에 미묘한 대치전선이 형성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아시아의 패권을 놓고 힘을 키우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첨예한 갈등은 한미일 공조의 틀에도 영향을 미칠 조짐이다. 동북아의 불안정성이 점점 커지는 바탕에는 각국에서 발흥하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이 내건 ‘할 말은 하는 자주 외교’ 노선은 미국 일본 중국과의 관계를 모두 불편한 긴장관계로 몰아가고 있다. 핵문제로 동북아 정세를 흔드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도 별다른 성과가 없다. 이대로 가다간 한국이 외톨이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외교대란(大亂)’이다. 격랑에 휩싸인 동북아 세력경쟁의 실태와 원인, 대책을 2회에 걸쳐 싣는다.》

▽민족주의의 충돌이 동북아 불안으로=박철희(朴喆熙)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냉전시대에 ‘공동의 적’의 뒤에 가려져 있던 각국의 민족주의가 최근 수년간 전면에 부상했다”며 “한국의 좌파 민족주의, 일본의 우파 민족주의, 중국의 중화민족주의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충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및 역사왜곡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 일본과 중국의 센카쿠 열도(중국은 댜오위다오·釣魚島라고 부름) 분쟁,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으로 인한 한중 갈등은 모두 각국의 민족주의가 부딪치는 접점이다.

28일 40여 명의 일본 민간시찰단이 해상보안청의 호위를 받으며 상륙한 ‘오키노토리(沖ノ鳥)’ 섬도 일본과 중국의 영토 민족주의가 충돌하는 현장. ‘오키노토리는 암초에 불과하므로 섬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중국에 맞서 일본은 도쿄만에서 1740km 떨어진 이 돌섬을 기점으로 삼아 방대한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확보했다.

일본의 우경화는 이미 돌이키기 힘든 대세다. 1990년대 이후 10여 년간의 불황기에 일본 정계 등을 장악한 우익세력이 꾸준히 민족주의를 강화시켜 왔다는 게 이원덕(李元德)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의 분석. 이들은 과거사에 대한 죄책감 없이 팽창적 민족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민족주의는 가장 편협한 형태인 쇼비니즘(국수주의·國粹主義)의 양태를 띠고 있다.

중국은 경제성장에 따른 주민의 욕구와 소수민족 문제를 제어하는 통로로 중화민족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국가 지도부도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국가 정체성을 떠받치는 이데올로기로 민족주의를 고양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19세기 이후 패배의 역사를 만회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이는 대외정책 기조가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림)’에서 ‘화평굴기(和平굴起·평화롭게 우뚝 일어섬)’로 바뀐 데서도 잘 드러난다.

중국의 ‘단대공정(斷代工程·하, 은, 주 등 전설상 중국 고대왕조의 역사화)’과 고구려사 왜곡에 관한 ‘동북공정’, 55개 소수민족 역사를 모두 중국역사로 간주하는 ‘통일다민족국가론’이 모두 민족주의 발현에 따른 산물이다.

이에 대해 일본 방위청의 싱크탱크인 방위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의 해양진출과 민족주의 대두를 경고하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중국에선 포털사이트 시나닷컴이 주도하는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반대 서명에 1000만 명이 서명하는 등 인터넷상에서도 민족주의가 드세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자주외교를 표방하며 ‘할말을 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드러낸 데 대해 주변국가에서는 결국 민족주의가 강화되는 현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본과 중국은 한국이 통일될 경우 특유의 민족주의가 폭발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한중일의 대응=미국은 빌 클린턴 정부 시절 친(親)중국 제스처를 보였으나 최근에는 일본과 동맹을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은 중국이 더 성장했을 경우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일찌감치 일본과 손잡고 대비책 마련에 나선 것 같다”며 “미일과 중국 사이에는 갈등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미일 외교·국방장관 회담에서 대만문제에 협력하기로 하는 등 중국의 군사력 팽창에 공동 대응하기로 한 것이나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미국이 공개 지지한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 미국의 동북아 미군 재배치도 대만 사태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일본이 최근 한국 중국과의 마찰을 마다하지 않는 것도 굳건한 미일동맹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

중국은 미일동맹에 맞서 대만 독립 저지를 위해 무력 동원을 합법화하는 반분열법을 만드는 등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

노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동북아의 위험 요인을 평화구도로 이끌겠다는 구상이다. 한국이 미국과의 관계 설정에 있어 중국과 일본의 중간쯤 되므로 한미동맹을 강조하면서도 ‘자주’와 ‘균형자’를 내세워 독자노선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논리의 연장선에서 한미 관계는 오히려 소원해지고 있다.

특히 동북아 균형자 역할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의 ‘이상’과 ‘능력’ 간의 괴리를 지적하고 있다. 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꿩도 먹고 알도 먹겠다는 계산이지만 자칫 둘 다 놓치고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베이징=황유성 특파원 yshwang@donga.com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베이징=황유성 특파원 yshwang@donga.com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브레이크 없는 中-日-러 군사력 경쟁▼

최근 몇 년간 진행되어 온 동북아 각국의 군비 증강은 ‘브레이크 없는 질주’와 같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가 군비 경쟁에 몰두하면서 동북아의 새로운 냉전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일본 자위대의 경우 질적으론 미국 러시아에 이은 세계 3위의 첨단군으로 평가받고 있다. 첨단 90식 전차(240여 대)와 F-15J 203대, F-2 공격기 65대를 운용 중이다. 여기에 최신형 E-767 조기경보기 4대와 E-2C 호크아이 조기경보기 13대를 보유, 완벽한 방공태세를 갖추고 있다. 또 한국은 8대뿐인 대잠초계기를 99대나 보유해 세계 최고 수준의 대잠수함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올해 끝나는 신중기 방위력정비계획에 따라 공중급유기(4대)와 경항공모함으로 평가되는 1만3500t급 헬기탑재호위함, 작전 반경이 대폭 늘어난 신형 초계기까지 도입하면 일본은 원거리 타격 능력을 갖추게 된다.

중국도 1990년대부터 군 현대화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러시아제 최신예 SU-27, SU-30 전투기를 200대 이상 도입했고 자체개발한 J-10 전투기를 지난해 실전 배치한 데 이어 신형 Y-8 조기경보기도 도입할 예정. 또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구축함과 순항미사일을 탑재한 핵잠수함 등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70여 척의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이 올해 개량형 SU-30과 IL-78 공중급유기, IL-76 수송기 등을 도입하는 것은 대만해협의 제공권 장악과 대만상륙작전을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밖에 350기 이상의 핵탄두와 이를 운반할 수 있는 폭격기 400여 대,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아시아 최강의 핵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나아가 2010년까지 사거리 1만5000km급 신형 ICBM을 개발하고 현재 350기 안팎인 중단거리 미사일을 600기까지 늘릴 계획.

러시아는 최근 최신 레이더망도 피할 수 있는 스텔스 대함미사일을 개발한 데 이어 여러 개의 핵탄두를 탑재하고 초음속 비행으로 미국 미사일방어(MD) 체제를 뚫을 수 있는 신형 ICBM도 개발 중이다. 또 신형 ICBM을 탑재할 수 있는 차세대 핵잠수함 2척을 건조해 내년 중 실전배치할 계획이다. 러시아의 핵 전력은 ICBM 735기, 전략핵잠수함 13척, 핵탄두 3150여 기, 장거리 폭격기 78대 등으로 구성된다.

대만의 군사력은 질적으론 중국과 대등하거나 앞선다는 평가. 대만은 미라주와 F-16 등 200대의 신형 전투기와 다수의 해군 함정을 보유 중이며 중국의 미사일 공격에 맞서 신형 패트리어트(PAC-3) 미사일도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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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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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많은 댓글

  • 2014-08-08 20:38:16

    불교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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