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85>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2월 18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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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군사를 내는 데 어울리지 않게 신중한 걸 보니 이번에는 항우도 끝장을 보려는 심사 같다. 서초(西楚)의 전력을 쥐어짜 형양으로 몰고 오려 함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나도 전력으로 맞서지 않으면 안 된다. 그가 근거지인 팽성을 지키기 위해 저토록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처럼 나도 관중(關中)을 먼저 정비한 뒤에 형양으로 돌아와 결판을 내야겠다.)

그렇게 헤아린 한왕 유방은 그해 6월 형양(滎陽)을 한신에게 맡기고 홀연 역양((력,역)陽)으로 돌아갔다. 그때 한왕이 거느리고 간 것은 호위할 군사 몇천에 장량과 번쾌 조참 하후영 등 오래된 장수들뿐이었다.

역양은 지난해 파촉(巴蜀)을 나온 한왕이 삼진(三秦)에 자리 잡으면서 남정(南鄭)을 대신해 도읍으로 삼은 곳이었다. 그 해 봄 함곡관을 나설 때 한왕은 승상 소하를 그곳에 남겨 관중을 지키고 다스리게 했다. 소하는 그런 한왕의 뜻을 받들어 관중을 잘 보존했을 뿐만 아니라, 멀리 관동으로 나가 싸우는 한나라 군사들에게 든든한 근거지가 되게 했다.

역양에 이른 한왕은 먼저 공자 영(盈)을 태자로 세워 후사(後嗣)로 삼았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제후의 아들로서 관동에 있는 자들을 모두 역양으로 불러들여 태자를 호위하게 하였다. 팽성에서 참담한 꼴로 쫓기면서 받은 충격이 비로소 한왕에게 한 군왕(君王)으로서의 자신과 국가로서의 한(漢)나라에 대해 자각하게 만든 듯했다.

이어 한왕은 다시 한번 크게 사면령을 내려 관중의 민심을 거둬들였다. 백성들은 옛 진나라 시절의 엄한 법뿐만 아니라 가혹한 전란의 시대를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저지르게 된 크고 작은 죄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 백성들의 짐을 덜어 준 한왕은 또 사관(祀官)에게 명을 내려 하늘과 땅, 동서남북과 상제(上帝)와 산천에 제사 지내게 하고, 이후에도 때에 맞춰 제사를 이어 가도록 했다. 그 역시 겁먹고 혼란된 관중의 민심을 달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여 팽성의 패전으로 뒤숭숭하던 관중의 민심을 어느 정도 가라앉힌 한왕은 그동안 목에 걸린 가시와도 같았던 폐구성(廢丘城)으로 눈길을 돌렸다. 폐구성 안에는 옹왕(雍王) 장함이 벌써 아홉 달째나 높고 든든한 성벽에 의지해 버티고 있었다. 지난해 처음 삼진을 평정할 때의 기세로 밀어붙여 장함을 죽이거나 항복하지 못한 게 탈이었다.

그때 한왕은 적지 않은 군사를 남겨 폐구성을 에워싸고 장함의 항복을 기다리게 하였으나 뒷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왕이 대군을 이끌고 함곡관을 나가 팽성을 차지하는 사이 성문을 열고 뛰쳐나온 장함은 에워싸고 있던 한군을 무찔러 내쫓았다. 그리고 인근의 땅을 휩쓸며 곡식과 장정들을 성안으로 거둬들여 다시 돌아올 한군과 싸울 밑천을 든든히 했다.

변고를 들은 소하가 급히 군사를 모아 폐구성으로 보냈으나 그때는 이미 모든 게 늦은 뒤였다. 배로 늘어난 옹군(雍軍)이 배불리 먹고 높은 성벽에 의지해 버티니 관중에 남아 있는 장졸로는 어찌해 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장함과 폐구성은 뱃속에서 자라가는 종양처럼 안에서 한나라를 위협해 왔다.

한왕은 소하에게서 다시 3만 군사를 얻어 폐구성으로 달려갔다. 원래 성을 에워싸고 있던

군사들과 합쳐 한군은 7만이 넘는 대군이었으나 막막하기는 아홉 달 전이나 별로 다를 게 없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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