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영균]부동산 시장의 보복

  • 입력 2005년 2월 11일 17시 55분


코멘트
‘집값은 반드시 잡겠다’는 말을 믿어야 하나. 정부는 이렇게 다짐하고 있지만 서민들은 늘 불안하다.

어느 날 갑자기 집값이 뛰기 시작하면 내 집을 마련하려는 서민들은 속수무책이었고 ‘집값 안정’을 내세우던 정부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것이 집 없는 서민과 소형 주택 소유자들이 몸으로 얻은 교훈이다.

이 정부에서는 과연 달라질까. 초강수의 부동산 투기억제책에 고개를 숙인 집값이 앞으로 얼마 동안이나 지속될까. 정권이 바뀌면 집값이 다시 뛰는 것은 아닐까.

올해 초부터 대통령이 ‘집값 안정’을 다짐했지만 불안 심리는 아직도 여전하다. 설 연휴를 전후해 급등세를 보이고 있는 경기 성남시 판교 신도시 주변 아파트 값이 이런 심리를 잘 반영한다.

판교 인근 성남시 분당과 용인시 수지 등에서는 중대형 아파트 값이 급등하고 벌써 서울 강남으로 상승세가 옮겨 붙을 조짐이라고 한다. 건설교통부 주택국장은 “모든 제도적 장치를 동원하겠다”고 하고 내수 경기를 살리려던 정부는 투기 대책에 고민하고 있다.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은 “주택 값에 대해서는 정부가 아주 특별한 생각을 하고 있다”며 “(집값을) ‘반드시 잡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말을 믿어 주면 좋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의 발언으로 미루어 집값은 일단 안정될 수 있을지 모른다. ‘모든 제도적 장치’를 동원하겠다는 말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집값을 잡겠다는 뜻이라면 당분간은 안정을 기대할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으로 집값이 안정될까. 이런 정책이 신뢰를 얻으리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소비자들은 투기 조사와 세금 공세 위주의 부동산 투기 대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잘 알고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집값은 잡겠다는 식의 부동산 대책은 ‘배 아픈 사람’을 위한 대책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정 집을 갖기 원하는 서민들을 위한 대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정책은 일시적으로 집값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르나 불안심리에 불이 붙으면 언제라도 집값은 단숨에 급등할 수 있다.

집값 불안의 직접적인 원인은 주택 공급의 부족에 있다. 경기 침체와 각종 부동산 규제로 지난해 주택 건축 인허가를 받은 건수가 급격히 줄었다. 특히 서울에서는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 가격이 오르는 게 시장의 법칙이 아닌가.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새집에서 살고 싶어 하는 수요가 늘어나는 데 있다. 더 나은 주거환경을 찾으려는 소비자의 욕망을 막는 정책은 한계가 있다. 시장을 무시한 정책은 훗날 시장의 보복을 받게 된다는 게 과거의 교훈이다. 새집을 짓지 못하도록 하는 정책은 부동산 가격 상승의 부담을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김대중 정부는 부동산 경기를 부추겨 집값 상승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투기를 부추겼던 전임 정부의 실책을 되풀이해선 안 되지만 노무현 정부가 새집 짓기를 막아 집값을 올렸다는 평가를 받지 않기 바란다.

박영균 경제부장 parky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