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영균]‘경제 올인’의 성공 조건

  • 입력 2004년 12월 22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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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이 불황에 정부가 ‘경제에 다걸기(올인)한다’고 했으니 국민의 기대는 얼마나 클까.

현 정부가 출범했을 때도 사람들은 기대에 부풀었다. 연평균 7%의 성장에 동북아 중심 국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누군들 박수를 치지 않았겠는가.

올해 초에도 그랬다. 가까이는 지난 추석 때에도 정치인들은 경제 현장으로 가서 ‘이제는 민생’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제 헛말이 되어 버렸다. 경제성장은 당초 약속의 절반 수준을 약간 웃돌 뿐이고 숱한 경제대책이 나왔어도 경기는 곤두박질쳤다. 화려한 구호는 과시 과장 과욕 과잉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국정 방향이 바뀐다고 하나 때늦은 감이 있다. ‘정쟁은 올해로 끝내고 경제에 다걸기할 것’이라니 ‘개혁 드라이브’만큼이나 ‘경제 드라이브’가 걸릴 터이지만 국민은 또 헛물만 켜지 않을는지 걱정이 앞선다. 이번에도 과욕과 과잉 선전은 금물이다.

더군다나 경제에 다걸기한다고 해서 경제가 나아지리라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업과 개인이 불황에 떨고 있는 터라 경기 회복 수단이 그리 많지 않다. 내년 말부터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나선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지만 그 효과는 크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많다.

다걸기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경제가 쉽사리 살아날까. 오히려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 나갈 때 회생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경제 다걸기가 성공하기 위해선 선결되어야 할 조건이 있다.

첫째, 얄팍한 표 계산으로 정책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과 경쟁력에 대한 국내외의 평가는 바닥 수준이다. 정책의 일관성도 없고 실행력도, 추진력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경제정책을 냉정하게 판단하기보다는 표 계산에 따라 결정하는 한 경제회생은 물 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다.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정책에서 나타난 것처럼 우왕좌왕하지 말라는 얘기다.

둘째, 경제전문가와 경제관료를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경제전문가와 경제관료들은 직접 집을 짓는 사람들과 같다. 아무리 좋은 설계도가 있어도 이를 실행할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 ‘부총리는 선장, 청와대 참모는 등대’라고 했다지만 선장에게는 그에 걸맞은 권한을 주어야 한다.

셋째, 지금 한국 경제는 단시간에 살아나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말하자면 중병에 걸렸다고 보아야 한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도 얼마 전에 현재와 같은 상황이 4, 5년은 갈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단기간에 효과가 없다고 경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 위원장이 말하는 ‘장기주의’로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제를 못 살리면 ‘감옥’에 갈 각오를 가져야 한다. 잘못되면 남의 탓으로 돌리는 방관자에게 경제를 맡길 수는 없다. 한국 경제를 파산의 위기로 몰아간 김영삼 정부 출범 후 ‘신경제 100일 계획’을 마무리 지을 무렵 노사분규가 심해지고 경제가 어려움을 겪자 김영삼 대통령이 박재윤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에게 이렇게 경고했다고 한다. “경제 못 살리면 감방 간대이”라고.

박영균 경제부장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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