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헌]국회는 정상화 됐지만…

  • 입력 2004년 12월 21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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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지도부가 국회 정상화 방안을 놓고 4자회담을 가진 21일 국회의사당은 시위장을 방불케 했다.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들이 곳곳에서 농성을 벌였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안 재상정을 막겠다’며 2주째 국회 3층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에서 점거 농성을 계속해 오다 이날 밤 해산했다. 4자 회담에서 양당 지도부가 마라톤회담 끝에 4개 항의 합의문을 발표한 직후였다.

열린우리당의 재야 출신 및 소장파 의원 51명은 국보법 폐지 관철을 내걸고 20일부터 국회 146호실에서 ‘240시간(열흘) 의원총회’를 계속한다며 농성에 들어갔고, 민주노동당도 145호실에서 국보법 연내 폐지를 촉구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이날 밤 4자회담 결과가 불만족스럽다며 강도 높은 투쟁을 다짐했다.

각 당의 농성장엔 매트리스와 모포, 생수통이 곳곳에 널려 있어 대학가 농성 현장을 연상하게 했다.

태반이 운동권 출신인 열린우리당 농성 의원들은 익숙한 태도로 농성에 임하고 있다. 농성장엔 ‘국보법 철폐하고 민주주의 달성하자’, ‘국보법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플래카드와 결의문이 내걸렸다. ‘오전 6시 기상, 자정 취침’을 기준으로 짜인 일정엔 오전 오후 두 차례의 인원 점검 시간도 있다. 민주노동당은 아예 농성장에 TV를 비치하는 등 장기전에 들어갔다.

여야가 이 같은 실력 행사에 들어간 것은 국보법 등 4대 법안의 처리와 관련해 자신들의 주장을 결연히 표명함으로써 상대 당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 배경에 서로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사회 갈등과 대립을 대화로 푸는 데 앞장서야 할 의원들이 자신들의 견해차조차 좁히지 못한 채 농성을 벌이는 것은 정치의 본령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게 한다.

여야가 합리적 토론과 절충을 모색하는 대신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완승만을 추구한다면 의회정치는 존립의 위기에 놓일 수밖에 없다. ‘농성 정치’는 구태를 벗지 못한 한국정치의 단면이다.

이승헌 정치부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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