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12년 英 필트다운 化石 소동

  • 입력 2004년 12월 17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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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12월 18일 세계 고고인류학계는 일대 흥분에 휩싸였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를 발견한 것. 유인원과 인류의 특성을 고루 갖춘 ‘원숭이 인간’의 증거가 영국 남동부 소도시 필트다운의 한 채석장에서 발굴됐다.

화석 형태로 남아 있는 두개골과 턱뼈 조각들. 이를 감정한 런던 자연사박물관은 50만 년 전쯤의 원인(原人)의 뼈라고 결론지었다. 조각을 짜맞춘 결과 두개골 형상은 인간과 비슷한 반면 턱뼈의 치아배열은 원숭이와 매우 흡사했다. 원숭이에서 인간이 진화했다는 명확한 증거였다. 화석을 발견한 아마추어 고고학자 찰스 도슨은 가장 오래된 인류의 증거를 찾아낸 공로로 일약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1953년 새로운 연대 측정기술로 조사한 결과 필트다운 화석은 겨우 600년밖에 안 된 인간의 두개골과 오랑우탄의 턱뼈로 만든 위조품인 것으로 드러났다.

과학역사상 최대 사기극으로 꼽히는 이 사건의 범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도슨을 비롯해 박물관장, 감정가 등이 줄줄이 용의선상에 올랐으나 그들은 이미 죽었거나 혐의를 부인했다.

어떻게 이런 허술한 조작극이 가능했을까. 스티븐 제이 굴드 하버드대 고생물학 교수는 ‘소망적 사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1856년 네안데르탈인 화석이 최초로 발견된 뒤 5000여 점이 넘는 선사시대 인류 유골이 발견됐지만 인류의 진화과정은 아직 밝혀진 것보다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 인간과 유인원이 공통의 조상에서 분리됐다는 것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확실한 화석 증거가 없기에 ‘진화론’은 ‘창조론’의 끊임없는 공격을 받으며 ‘가설’로 존재해 왔다. ‘잃어버린 고리’에 집착하던 고고인류학자들에게 필트다운 화석은 믿고 싶은 것을 믿게끔 해 준 ‘완벽한 증거’였다.

1999년 미국에서 또 하나의 대형 화석 날조 사건이 터졌다. 몸의 구조가 새와 비슷하면서도 공룡과 같은 긴 꼬리를 갖고 있는 화석이었다. 공룡이 진화해서 새가 됐다는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인 듯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화석 파편을 동원해 만든 위조품으로 판명됐다.

“화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고고학자들이 즐겨 쓰는 이 말에 비판가들은 한 문장을 추가한다. “다만 조작될 뿐이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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