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63년 고종 즉위

  • 입력 2004년 12월 12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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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3년 조선왕조 26대왕 고종(高宗)이 즉위한 날이다. 철종이 후사 없이 죽자 아버지 흥선군과 익종비(翼宗妃) 조대비(趙大妃)와의 묵계에 따라 겨우 열두 살에 왕이 되었다. 물리적 연령으로 따지자면, 요즘 초등학교 5학년의 나이로 국사를 책임지는 자리에 오른 것이다.

고종은 1907년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당하기까지 44년간 재위했다. 1910년 한일강제합방 이후 이태왕(李太王)으로 불리다 1919년 세상을 떠난다. 그는 양요, 쇄국, 개항, 임오군란, 갑신정변, 갑오개혁, 청일전쟁, 삼국간섭, 황후시해, 아관파천, 독립협회, 러일전쟁, 을사조약 등으로 이어지는 근대 한국의 ‘파란의 역사’ 한가운데서 살았다.

그의 정치력이나 리더십에 대해서는 아버지와 아내(명성황후)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나라를 잃은 ‘바보 군주’라는 평가부터, 개명군주(開明君主)였으나 적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했던 외로운 애국자였다는 평가까지 다양하다.

평화로운 시대에는 인간의 의지가 발휘될 수 있는 여지가 많지만 격동기에는 인간의 힘만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곧잘 부닥치게 된다. 따라서 고종을 이해하는 일은 그의 시대를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복잡하고 어렵다.

어쨌든, 고종은 능력 없는 지도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서양 문물의 도입을 통해 조선의 독립과 부국강병을 꾀했다는 점에서 진보적이었다. 그러나 ‘절대 군주’라는 태생적 한계는 개방과 개혁에 대한 그의 역할을 다분히 제한시켰다. 게다가 아내마저 살해되고 친일내각의 볼모로 잡히자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살기 위해서는 무엇에든지 의지해야 할 판이었다. 국가의 목적보다 왕실과 자신의 안전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외국인들 가운데 고종과 긴밀했던 미국 공사 허버트의 말은 이 점에서 귀 기울일 만하다.

“조선의 비극은 국가존립의 위기에서 형편없는 왕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지도자를 가졌다는 데 있었다. 고종은 평화시기였다면 좋은 군주가 될 수 있는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극한에 처한 왕이었고, 그것을 극복할 만한 능력은 없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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