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9년 KAL기 北피랍

  • 입력 2004년 12월 10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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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실 문고리를 노리는 붉은 쥐 한 마리.’

동아일보 1970년 2월 16일자 1면에 실린 ‘악몽 65일’이라는 제목의 박익동(朴益東·당시 55세) 씨의 체험 기고문에 나오는 표현이다. ‘붉은 쥐’는 1969년 12월 11일 강릉발 서울행 대한항공(KAL) 여객기를 공중 납치한 고정간첩 조창희(趙昶熙·당시 42세) 씨. ‘65일’은 박 씨가 북한에 억류돼 있던 기간이다.

문제의 비행기에는 승무원 4명과 승객 47명 등 51명이 타고 있었다. 조 씨는 권총 한 자루로 비행기의 기수를 북쪽으로 돌렸다. 조종사와 부조종사는 북한 땅에 내리고 나서야 “객석에 무장한 동료가 더 있으니 기수를 돌리지 않으면 승객들이 죽는다”는 조 씨의 위협이 거짓임을 알았다.

조 씨는 공항에서 검은색 세단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하지만 나머지 50명은 그때부터 공포와 악몽의 연속이었다.

같은 달 27일경부터 이른바 ‘학습’(사상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루는 한 중년 여성 승객에게 “도대체 자식 교육을 어떻게 했느냐”는 북측의 핀잔이 쏟아졌다. 아들이 한 북한 규탄대회에 학생 대표로 나와 규탄문을 낭독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듬해 1월 2일 오락장으로 안내된 승객에게 약간의 술이 제공됐고, ‘노래를 부르라’는 명령도 떨어졌다.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누군가의 입에서 가곡 ‘가고파’가 흘러나왔고, 노래 따라 눈물도 하염없이 흘렀다.

북한은 승객과 승무원을 송환하라는 국제사회의 압력이 계속되자 2월 14일 39명의 승객을 돌려보냈다. 사상 교육 과정에서 가장 비협조적이었던 승무원 4명과 언론인 등 승객 7명은 끝내 풀어주지 않았다.

7일 유럽 순방을 마치고 이라크에 주둔 중인 자이툰부대를 방문하려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특별기 내에서 “이 비행기는 서울로 바로 못 간다”고 했을 때 일부 취재진은 “혹시 평양으로 가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30여년 만에 북한행이 이처럼 대수롭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 시대 변화를 북에 남아 있을 11명의 납북자도 함께 느낄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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