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영]방송위 “없던 것으로 해달라”

  • 입력 2004년 12월 7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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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위원회는 6일 오후 1시 SBS에 대해 조건부 재허가 추천 결과를 발표했다. 방송위는 이날 오전 9시부터 낮 12시 15분까지 9명의 위원들이 숙의한 뒤 45분간 실무진이 문구를 다듬어 A4용지 1장 분량의 의결문을 내놓았다.

그러나 1시간 동안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의결문의 모호한 용어에 대한 질문이 잇따르자 방송위는 절반가량을 “없던 것으로 해 달라”고 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방송위는 SBS에 매년 세전 이익의 15%를 출연하라는 조건을 부과한 데 대해 의결문에서 ‘초과 이윤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도록 하는…’이라고 밝혔다. 기자들의 질문은 우선 ‘초과 이윤’에 집중됐다.

“초과 이윤이 무슨 뜻인가. 민영방송 개혁을 주장하는 쪽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그대로 받아쓴 게 아닌가.” “이윤의 15%는 정당한 노력으로 벌어들인 게 아니라는 뜻인가.” “MBC가 땅 투기로 번 이득은 초과 이윤인가, 아닌가.”

그러자 방송위는 “법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그 표현은 빼 달라”며 어물쩍 넘어갔다.

의결문 중 ‘1990년 공보처 장관에게 제출한 각서 등을 검토해 볼 때 (SBS의 15% 출연 약속이) 민방 허가 과정에서 사업권을 획득한 매우 중요한 요인이었음을 확인했다’는 대목도 문제가 됐다.

기자들이 “사회 환원 약속이 허가의 전제조건이었다는 뜻인가. 근거 자료를 보여 달라”고 묻자, 방송위는 또 “정정하겠다. 확인한 적이 없다”고 말을 뒤집었다.

방송위는 결국 의결문의 4개 단락 중 2개 단락에 대해 “실무진이 작성한 것으로 위원들의 의결사항이 아니다”고 발뺌했다.

방송위의 ‘오락가락 답변’은 SBS가 재허가 합격점을 웃도는 평점을 받은 시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9월 14일 1차 보류 대상 사업자 발표 때는 점수가 안 나왔다.” “(그러나) 가채점 결과는 나왔다.”

방송위는 결국 이날 SBS 재허가 과정을 둘러싼 여러 질문에 대해 단 하나의 명쾌한 답변도 내놓지 못했다.

이를 본 한 기자의 마무리 질문이 귀를 잡아당겼다.

“이번 재허가 심사 과정이야말로 청문회가 필요한 게 아닌가?”

이진영 문화부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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