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종석]‘뉴딜’은 해법 아니다

  • 입력 2004년 11월 8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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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때는 ‘빅딜’이라는 것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뉴딜’이라는 것을 들고 나왔다. 뉴딜이란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시행한 대규모 재정지출과 토목공사를 이르는 말로 정부지출 증가를 통해 총수요를 증가시키는 고전적 경기부양책이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세계 각국은 재정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의 한계와 부작용을 경험했다. 무엇보다도 재정적자와 공공부문의 비대화에 의한 생산성과 성장잠재력의 저하가 문제였다. 정부가 국민세금 100억원을 걷어 정부청사를 짓는 것과 민간기업이 100억원을 들여 공장을 짓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경제적 효과가 더 클지는 자명하다.

▼특혜시비 물가불안등 부작용▼

그래서 어느 나라든지 국민경제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클수록 그 경제의 생산성과 활력은 저하되게 되어 있다. 또 재정지출의 증가는 지금 한국경제처럼 공급능력에 애로가 있을 때는 민간투자의 위축을 초래한다.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유지되려면 민간의 기술투자와 설비투자가 지속돼야 하는데 정부지출이 민간투자를 구축(驅逐)하면 성장잠재력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런 우려 때문인지 정부는 예산보다는 연기금이나 민간자본을 동원해 투자를 촉진하겠다고 한다. 연기금이나 민간자본은 속성상 수익성이 보장돼야 한다. 지금 한국에서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정작 투자하고 싶은 곳은 정부규제로 막혀 있고, 투자를 해도 되는 곳은 수익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민간자본을 동원해 대규모 투자를 유도하려면 수익성을 보장해주거나 규제를 대폭 풀어 지금은 금지되어 있는 곳에 투자를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민간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수익성을 보장해주는 일이나, 규제를 풀어 투자를 가능하게 해주는 일이나 모두 특혜시비와 여론의 반대를 불러 올 것이다. 다 뚫은 터널 앞에서 한 사람이 단식농성만 해도 공사를 중단시켰던 것이 현 정부다. 이 정부의 말을 믿고 민간이 대규모 공공프로젝트에 투자하려 할지 의문이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민자를 유치해 기업도시를 건설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온 지 오래다. 이를 위해서는 각종 규제를 풀어야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온갖 특혜시비와 시민단체의 반대로 한 걸음도 못나가고 있다. 뉴딜을 추진하려면 수도권 규제나 토지규제, 대기업의 투자규제들을 풀어야 할 텐데 이런 규제 성역들을 허물지 않고 어떻게 대규모의 민자를 동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뉴딜 정책의 약효는 2006년 상반기쯤에나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예측대로 2005년부터 한국경제가 경기 회복국면에 들어선다면 이는 그야말로 불에다 기름 붓는 격이 되어 경기과열과 물가불안, 부동산 투기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저명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샤워할 때 온도를 조절한다며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을 오락가락 하게 만드는 것처럼, 정책효과에 시차가 있기 때문에 정부의 경기조절정책이 오히려 경기순환의 진폭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음을 오래전부터 경고해 왔다.

▼경제에 필요한건 정치적 안정▼

실제로 1990년 4월에 정부는 이미 경기가 회복국면에 들어선 것을 모른 채 고강도 경기부양 정책을 썼다가 1991년에 경기과열과 물가불안, 부동산 가격급등을 초래해 엄청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치렀던 경험을 갖고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효과도 불확실한 70년 묵은 경제정책이 아니라 한국경제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적극적인 공급능력 향상 정책이다. 그리고 이것도 정치사회적 안정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 우리 경제에 필요한 것은 ‘뉴딜’이 아니라 ‘폴리티컬 딜(정치적 타협)’이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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