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47년 클로로포름 마취제 사용

  • 입력 2004년 11월 7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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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신앙심이 두터웠던 영국의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심프슨(1811∼1870)은 성경을 읽다가 창세기 2장 21절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의학적 호기심 때문이었다.

“어떻게 갈빗대 하나를 떼 내는 동안 아담은 고통 없이 잠잘 수 있었을까.”

다소 엉뚱해 보이지만 사실 그에게는 절박한 질문이었다. 그는 수족이 결박당한 채 공포에 질려 수술대에 오르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

오늘날 웬만한 수술에서 으레 사용되는 마취제. 그러나 19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환자는 마취제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수술은 합법적으로 자행되는 무자비한 ‘고문’과도 같았다.

수술 중 환자의 고통을 잊게 해줄 수 있는 약을 찾던 심프슨은 동료 화학자로부터 클로로포름이라는 액체에 대해 전해 들었다. 여러 가지 치료약에 쓰이고 있지만 마취제로서는 아직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자신을 대상으로 직접 실험에 나섰다.

그는 클로로포름을 수건에 묻혀 깊이 들이마셨다. 한동안 술에 취한 사람처럼 웃으며 수다를 떨다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몇 시간 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깨어난 그는 중얼거렸다. “세상을 뒤흔들 만한 약이다.”

순도 높은 클로로포름 개발에 박차를 가한 그는 1847년 11월 8일 한 소년의 팔 부위에서 뼈를 잘라낼 때 이 마취제를 공식 사용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러나 교회의 반대는 맹렬했다. 신학자들은 “인위적으로 고통을 감소시키는 것은 악마의 행위”라고 주장했다.

마취제 공방은 수년을 끌었다. 1853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아홉 번째 자녀인 레오폴드 왕자를 분만할 때 마취제를 사용하자 반대론을 점차 수그러들었고 마취제는 급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현대의학에서 클로로포름은 더 이상 인체용 마취제로 쓰이지 않는다. 독성으로 인해 간 기능이 저하되는 부작용이 발견됐기 때문. 요즘은 개구리 해부 때나 종종 이름이 오르내릴 뿐이다.

그러나 환자를 수술의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의사는 여유 있게 수술을 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클로로포름 마취제는 ‘의학계의 혁명’으로 불린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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