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고승철 칼럼]金在益수석이 그립습니다

  • 입력 2004년 11월 2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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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익(金在益)이라는 ‘시대의 선각자’가 그리워진다. 나라 경제가 몹시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의 미래가 매우 불확실한 탓에 더더욱 그가 그립다.

김재익은 어떤 인물인가.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사건으로 순직한 그는 당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었다. 그는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비위를 잘 맞추어서라기보다 경제 현안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내놓고 미래를 위한 뚜렷한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5共때 물가 잡고 IT시대 준비▼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젊은 부하에게조차 경어를 쓸 만큼 겸손하면서도 최고 권력자에게 직언을 마다하지 않는 강직함을 겸비했다. 시장경제 체제를 뿌리내리겠다는 일념에 온몸을 던진 열정파였다. 또한 명석한 두뇌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慧眼)을 가진 지성인이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의 글을 옮겨보자.

“김재익은 꽃다운 청춘을 바쳐 이 나라 경제를 바꾸어 놓았다. 그가 보여준 공복(公僕) 정신과 경제철학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원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80년대 경제개혁과 김재익 수석’, 삼성경제연구소)

1983년 김재익은 대통령에게 물가 안정을 위해 84년 정부 예산을 동결할 것을 건의했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 예산을 동결하는 것은 정부 여당으로서는 엄청난 결단을 요하는 일이었다.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이 건의는 채택됐고 덕분에 한국경제는 만성 인플레 굴레에서 벗어나는 디딤돌을 마련했다.

그의 경제철학은 ‘안정, 자율, 개방’으로 요약된다. 그는 정보화시대에 대비해 통신 인프라에 과감한 투자를 했다. 오늘날 한국이 정보기술(IT) 강국이 된 것은 이런 통찰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쿠데타로 집권한 5공 정권은 헌정질서를 어지럽혔기에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경제측면에서는 시장기능을 존중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기도 한다. 이는 80년대 후반 국제수지 흑자, 높은 경제성장, 물가안정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는 성과로 나타났다.

요즘 경제 사정을 보면 답답하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신이 실종된 듯하다. 자원낭비가 우려되는 한국판 뉴딜정책 구상을 보니 “기업이 국가”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장식용 수사(修辭)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얼어붙은 민간 투자심리를 살릴 방안을 찾아야지 효율성이 불분명한 투자사업에 왜 정부가 나서나.

경제난 탓에 세수(稅收) 기반이 취약해지는데도 정부는 씀씀이를 늘리려고 한다. 내년에 대규모 국채를 발행해 적자분을 메우겠다고 하니 신용불량자처럼 일단은 빚을 쓰고 보자는 심리와 별반 다를 바 없다.

민간을 위축시키고 국가의 힘이 커지면 국민의 자유가 줄어든다. 권력자는 자신이 쥔 칼의 크기를 더 키워 휘두르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한국 상황을 보자. ‘람보형’ 권력을 견제하려는 여론과 비판언론에 대해 권부(權府)측은 반(反)개혁 세력이라고 몰아세우고 있지 않은가. 유능하지 않은 권력이 과욕을 부리는 나라가 융성한 사례는 세계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품격 낮은 발언으로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지도층의 리더십으로는 밝은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적 사유(思惟)가 결여된 일부 386세대의 만용에 한국을 맡기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

▼국격 떨어뜨리는 현정부 리더십▼

질문 한 가지…. 김재익의 죽음과 관련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묻는다. 대한민국 국가원수를 암살하려 폭탄 테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진상은 뭔가. 한국의 국기(國基)를 흔들고 엘리트 공직자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행위에 대해 왜 사과하지 않는가.

늦게나마 김재익 박사의 21주기(周忌)를 추모하며 그의 경제철학이 이 땅에서 생명력을 이어가기를 갈망한다.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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