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獨슬로터다이크 “생명공학시대 휴머니즘은 죽었다”

  • 입력 2004년 10월 28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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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학회의 다산기념 철학강좌 강연자로 초청된 페터 슬로터다이크 독일 칼스루에 조형대 총장. 그는 28일 독일철학계의 대표주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를 맹비판하며 인본주의와 도덕주의를 넘어서 생명공학시대의 새로운 윤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박주일기자
한국철학회의 다산기념 철학강좌 강연자로 초청된 페터 슬로터다이크 독일 칼스루에 조형대 총장. 그는 28일 독일철학계의 대표주자인 위르겐 하버마스를 맹비판하며 인본주의와 도덕주의를 넘어서 생명공학시대의 새로운 윤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박주일기자
“인간 자체를 조작할 수 있는 생명공학의 등장은 교육과 도덕, 상징으로 인간을 교화시키려 했던 고전적 인본주의(휴머니즘)의 붕괴를 낳았습니다.”

1999년 인간복제의 긍정적 측면을 주목해야 한다는 ‘차라투스트라 프로젝트’를 발표해 독일 지성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페터 슬로터다이크 독일 칼스루에 조형대 총장(57)이 한국철학회 초청으로 서울을 찾았다.

슬로터다이크 총장은 28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나는 생명공학 옹호자가 아니다. 다만 생명공학시대가 제기하는 철학적 문제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갖기보다 책임감을 갖고 대응하자고 강조했을 뿐이다”고 밝혔다.

“인간복제 등으로 인간을 조작 변형시키는 것은 미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자연은 천재지변과 돌연변이로 인간을 왜곡, 변형, 창출했으며 인간 역시 유전자를 섞는 결혼제도를 통해 이러한 조작에 참여해 왔어요. 자연의 조작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인간이 여기에 참여하는 일은 왜 반대한단 말입니까.”

그는 “서구 기독교계는 인간의 유전병조차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인식하는데 여기에는 고통을 쾌락으로 받아들이는 서구철학의 자학적 존재론이 숨겨져 있다”고 설명하면서 자신의 주장에 대해 ‘파시즘적’이라고 비판한 위르겐 하버마스 등 비판이론가들을 선악의 이분법에 갇힌 도덕론자라고 맹비판했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이론은 1950년대 권위주의에서 자유주의로 넘어가는 서독의 정치적 상황을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의 발전에 기여한 것이 없어요. 그보다는 오히려 루만의 체계이론이나 데리다 등 프랑스 후기구조주의 사상가들이 더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한국철학회 주최의 다산기념 철학강좌 여덟 번째 강연자로 초청된 그는 사실 형이상학적 추상의 세계에 갇힌 서양철학을 비판하면서 몸과 공간 등 구체적 현실과 밀접하게 연관된 연구를 진행해 왔다. 1983년 그가 발표한 ‘냉소적 이성비판’은 칸트의 3대 이성비판서(순수이성, 실천이성, 판단력)의 뒤를 이은 4대 이성비판서라는 평을 받았다. 이 책에서 그는 “삶을 긍정한 디오게네스와 니체의 냉소적 이성비판의 전통이 인본주의와 계몽주의를 만나면서 삶 자체에 대한 냉소적 태도를 낳았다”고 비판하면서 그 건강성을 되찾을 것을 주창했다.

그는 ‘세계의 밀착-지구화에 대한 냉소적 비판’을 주제로 다음달 2일까지 서울대와 계명대 등에서 네 차례 강연을 갖는다. 이번 강연에서 그는 특히 확장과 수축이라는 공간 개념을 도입해 지구화를 역사적 시각에서 분석한다. 강연 문의 한국언론재단(www.kpf.or.kr) 홈페이지.

한편 그의 방한에 맞춰 그의 저서 ‘인간농장을 위한 규칙’(한길사)과 그에 대한 국내 학계의 논의를 담은 ‘인간복제에 관한 철학적 성찰’(문예출판사)이 잇달아 출간됐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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