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놀라워라, 한국화의 파격

  • 입력 2004년 10월 19일 19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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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창 작 ‘뢴트겐의 정원’(2004년). 작가는 병원치료 중 라이트 박스에 비친 엑스레이 필름에서 명암의 단계적 변화가 먹의 농담처럼 나타나는 데 주목해 한국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사진제공 갤러리 세줄
한기창 작 ‘뢴트겐의 정원’(2004년). 작가는 병원치료 중 라이트 박스에 비친 엑스레이 필름에서 명암의 단계적 변화가 먹의 농담처럼 나타나는 데 주목해 한국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사진제공 갤러리 세줄
전통적인 한국화 기법에서 탈피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젊은 한국화가 두 사람의 전시가 눈길을 끌고 있다.

▽한기창전=한기창씨(38)는 X선 필름을 재료로 흑백화면을 만드는 독특한 작가다. 작가는 추계예술대 졸업 때까지는 화선지에 붓으로 사생을 하는 전통적 회화기법에 몰두했다. 그러나 지필묵(紙筆墨)이라는 전통적 재료에서 벗어날 길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1992년 교통사고로 병원을 찾았다가 X선 사진을 비추는 라이트 박스에 주목한다.

라이트 박스에 비친 검은색 필름에서 나타나는 명암의 단계적 변화가 먹의 농담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그는 그때부터 라이트 박스에 X선 사진을 오려 붙이는 새로운 방식의 그림을 탄생시켰다. 손가락과 척추가 바스러지거나 쇠가 박힌, 어떻게 보면 무섭기까지 한 고통과 상처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X선 사진들은 라이트 박스에 얹혀 꽃이나 나무, 식물의 줄기로 환생했다.

이번 전시에는 기존 작품 ‘뢴트겐의 정원’ 연작에 이어 다양한 입체와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신작들의 제목은 ‘치유의 과정’. 압박붕대를 캔버스에 널찍하게 동여매 의료용 봉합재료인 스킨 스테이플이라는 스테인리스 재료를 드로잉처럼 박아 넣었다. 김정희의 ‘세한도’를 스테이플을 이용해 재현하기도 했다. 2층 전시장엔 흙을 깔아 실제 정원처럼 꾸몄다.

유근택 작 ‘샤워’(2004년). 한지에 수묵채색이란 한국적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파격적인 구도와 기법으로 흡사 파스텔톤의 현대화처럼 보이도록 한 작품이다. 사진제공 사비나미술관

재료나 기법을 넘어 한국적 미학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한국화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고통과 상처로 얼룩진 현대인들의 내면에 치유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11월 5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갤러리 세줄. 02-391-9171

▽유근택전=유근택씨(40)는 동양화하면 떠오르는 관념적이고 정신적이라는 선입견을 과감히 타파한 작가다. 한지에 먹이라는 동양적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파격적 구도와 기법으로 흡사 파스텔톤의 현대화처럼 보이게 하는 그는 집과 일상을 소재로 현대인의 쓸쓸한 생활의 이면을 보여준다.

‘수평적 이사’ 연작은 경기 고양시의 한 아파트에서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아파트로 수평 이동한 삶의 터전을 소재로 한 작품들로 이사하는 과정을 몇 장면의 실내 풍경으로 표현했다.

쏟아지는 물방울을 세밀하게 그린 ‘샤워’ 연작은 ‘일상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샤워시간은 벌거벗은 인간이 세상의 무게를 느끼기도 하는 특별한 시간’임을 보여준다. ‘바닥 혹은 또 다른 정원’ 연작은 마룻바닥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장난감 파편들을 스쳐 지나가는 듯한 붓질로 쓱쓱 그려냈다. 작가는 제7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1998년), 제19회 석남미술상(2000년)을 수상했다.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안국동 사비나미술관. 02-736-4371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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