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짓기가 개인이나 기업만의 고민인 줄 알았더니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재정경제부가 투자와 소비를 자극할 수 있는 사업들을 하나의 ‘종합 플랜’으로 만들기로 하고 거기에 붙일 이름을 공모한다고 한다. 청사(靑史)에 남을 한국판 ‘뉴딜정책’을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개운치 않은 것은 이 정부의 종합경제비전에 해당하는 ‘동북아경제중심’의 작명을 둘러싼 우여곡절을 익히 보아 온 까닭이다.
▷‘동북아○○중심’이 국가적 경제비전으로 처음 떠오른 때는 2002년 1월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동북아비즈니스중심국가’를 주창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비즈니스 중심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던지 ‘동북아경제중심국가’를 들고 나왔다. 하지만 현실에 발을 딛지 않은 거창한 이름이 생명력을 가질 리 없다. ‘국가’라는 단어가 슬그머니 사라져 ‘동북아경제중심’으로 격이 낮아졌지만 방황은 끝나지 않았다. 우선순위는 ‘국민소득 2만달러’에 밀려났고 대통령 소속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마저 동북아시대위원회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이런 판이니 ‘동북아○○중심’ 하나만 놓고도 국민은 머리가 어지럽다. 일자리창출종합대책, 투자활성화대책, 중산·서민층대책, 빈부격차·차별시정대책, 국토균형발전대책은 어떤가. 그동안 쏟아진 정책 이름만 늘어놓으면 온 국민이 고복격양(鼓腹擊壤·배를 두드리고 땅을 치면서 태평성대를 즐긴다는 뜻)해도 모자란다. 경제만 살아난다면 이름이야 ‘뒷북 정책’, ‘속빈강정 대책’인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천광암 논설위원 iam@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