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봉주]‘방카쉬랑스 확대’ 아직 이르다

  • 입력 2004년 9월 13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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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에 시행된 방카쉬랑스의 확대 여부가 요즘 금융계의 이슈다. 은행권은 예정대로 내년 4월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의 보장성과 자동차보험에서 시행을 주장하는 반면 보험권은 연기 내지 대폭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방카쉬랑스 도입은 금융소비자의 이익을 제고하고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바람직하다. 그러나 은행은 보험업에 쉽게 진출할 수 있는 반면 보험사는 은행업 진출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측면에서 야기되는 불공정성과 은행의 시장 지배력이 월등한 상황에서 야기되는 폐해 등에 대한 우려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방카쉬랑스가 소비자의 이익과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는가, 그리고 은행의 지배력 남용은 제대로 통제되고 있는가 등의 문제가 관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유감스럽게도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은행 창구에서 팔기에 판매비용이 절감된다지만, 그것이 보험료 인하로 이어지고 있다는 강한 증거는 발견하기 어렵다. 판매 교육의 미비로 기존 보험사의 이미지를 실추시켰던 ‘불완전 판매’가 은행에서도 재연되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이런 문제는 연임을 의식하는 은행 경영진이 직원들에게 실적을 강요하기 때문에 심화되기도 한다. 은행창구마다 보험 상품을 취급하니 구입이 편하다고 하지만 전화, 인터넷 등에 의한 직접 판매가 활성화된 마당이다. 가격인하, 완전 판매가 병행되지 않으면 구입 편의성도 의미가 없다.

지금의 상황은 기존 보험설계사와 대리점이 희생되고 은행과 짝짓기를 못한 국내 자본 중소형 보험사의 생존이 위협받는 가운데 은행의 수익만 창출시키는 제로섬 게임에 불과하다고 본다. 파이가 보험권에서 은행권으로 이전된 것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불공정경쟁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대출 등 각종 은행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소비자들은 은행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할 경우 무방비 상태다. 보험업법에 끼워 팔기 금지 조항이 있지만 대출 신청자가 ‘꺾기’로 보험 가입을 요구받을 경우 이를 거절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현재 한국 보험산업의 총자산 규모는 국내 최대 은행의 자산 규모보다도 작지만 한국 보험산업은 어렵게 세계 7위 규모로 성장한 성공 사례다. 그런데 방카쉬랑스 도입 이후 시장 재편 구도를 보면 해외자본의 영향 하에 있는 은행과 보험사가 짝짓기를 통해 산업 구도를 재편하고 있다. 국내 자본에 대한 역차별이 방카쉬랑스를 통해 보험산업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상황이 나쁘면 탄력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 상황은 방카쉬랑스를 확대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시사한다. 예정대로 강행할 경우 보험산업의 기반은 현저히 약화될 것이다. 이 경우 과연 우리 국민경제에 어떤 부가적 이익이 있단 말인가.

노정된 여러 문제들을 시정할 수 있는 감독 기반을 구축하는 게 우선이다. 금융감독원은 방카쉬랑스 실태를 점검했고 많은 문제점을 확인했다지만 제대로 시정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부작용의 통제 가능성을 확인한 후에 확대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이봉주 경희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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