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251>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 입력 2004년 9월 7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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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펼침과 움츠림(4)

한(漢) 2년 시월 중순 한왕 유방은 마침내 대군을 이끌고 함곡관을 나와 관동으로 밀고 나아갔다. 아직 농서와 북지가 평정되지 않았으나 장량과 장이가 잇따라 찾아와 알린 중원의 소식이 더는 한왕을 폐구에 쉬고 있을 수 없게 했다.

홍수처럼 함곡관을 빠져나온 7만 한군(漢軍)이 동쪽으로 한나절도 가기 전에 군사가 터질 듯 들어찬 섬성(陝城)이 앞을 가로 막았다. 하남왕(河南王) 신양(申陽)이 패왕의 명을 받아 군비를 크게 증강한 성이었다. 척후를 보내 그와 같은 섬성 안의 사정을 알아낸 한신이 한왕을 찾아보고 가만히 말했다.

“섬성은 관동에서 보면 함곡관과 대적하고 있는 형세라 원래도 만만치 않은 성인데다, 지금은 항왕을 두려워하는 5만 군민(軍民)이 힘을 다해 지키고 있습니다. 힘으로 급하게 떨어뜨리자면 적지 않은 우리 장졸을 잃게 될 것이니 실로 걱정입니다. 차라리 우회(迂廻)로서 계책을 삼아 먼저 하남왕이 도읍하고 있는 낙양부터 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낙양은 이곳에서 5백리나 되고, 도중에는 신안(新安)처럼 작지 않은 현성(縣城)들도 여럿 있소. 만약 그들을 뒤에 두고 낙양으로 갔다가 그들이 뒤에서 들이치면 그때는 어쩌겠소?”

한왕이 걱정스런 얼굴로 그렇게 되물었다.

“신이 헤아리기로 그런 일은 없을 듯합니다. 섬성 뿐만 아니라 하남(河南)의 여러 현읍(縣邑)이 모두 굳게 성을 지키는 듯 보이는 것은 명을 내린 항왕을 진심으로 따르고 우러러서가 아닙니다. 그 힘을 두려워해서일 뿐이니, 항왕의 노여움을 사지 않을 정도로 지키는 것만 중하게 여길 뿐, 스스로 성을 나와 싸우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약간의 군사를 남겨 에워싸고 있는 시늉만하면, 그들은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그저 지키기만 할 터, 어찌 우리가 등 뒤로 적을 맞게 되는 일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낙양은 예부터 알려진 큰 성이요 하남왕 신양의 도읍이니, 작고 이름 없는 현읍들과는 다를 것이오. 더구나 하남왕 신양도 군사를 부릴 줄 아는 장수인데다, 왕이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성안에서 굳게 버티면 하루 이틀로는 떨어뜨릴 수 없을 것이외다. 그래서 날짜를 끄는 사이에 하남 각지에서 구원이 모여들면 그 아니 위태로운 일이겠소?”

한왕이 다시 걱정스레 물었다. 한신이 차근차근 그런 한왕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신양은 항왕의 재촉에 쫓겨 군사들을 모두 서쪽으로 보낸 터라 낙양에 남은 군사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우리가 지름길로 달려가 대군으로 낙양을 에워싸면 너무 뜻밖이라 놀란 나머지 싸울 마음이 없을 것입니다. 그때 사람을 보내 달래면 싸우지 않고도 신양의 항복을 받아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때 함께 있던 장량이 가만히 웃으며 끼어들었다.

“하남왕 신양을 달랠 사람은 상산왕 장이겠지요?”

한왕도 신양이 한때 장이를 섬긴 적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따로 공을 세워 나란히 왕이 된 마당에 옛 주인의 말을 고분고분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못미덥다는 듯 고개를 기웃거리며 물었다.

“그도 한 왕이 되었는데 이제 와서 상산왕의 말을 들어주겠소? 더구나 상산왕은 진여에게 땅까지 뺏기고 외롭게 쫓기는 신세인데......”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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