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나의 천년-발칙한 후손의 내 역사 찾기’

  • 입력 2004년 9월 3일 16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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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천년-발칙한 후손의 내 역사 찾기/표정훈 지음/297쪽 1만원 푸른역사

족보라는 것은 흔히 지금의 내가 얼마나 순일(純一)한 존재인가를 확인시켜주는 도구다. 시조(始祖)부터 시작되는 그 단선의 계열에서 내가 어디에 있으며 동시에 얼마나 뼈대 있는 가문에 속해 있는지 알게 해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족보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출판평론가로 잘 알려진 지은이의 이 책은 얼핏 보면 족보를 통해 자신의 가계사를 늘어놓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곧 깨지고 만다.

그는 960년 중국에서 바다를 건너 고려로 온 선조 표대박을 책 첫머리에 놓지만 이내 ‘족보에 대한 신뢰의 철회, 기원이라고 여겨왔던 것에 대한 의심’을 선언한다. 족보란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의 다름을 틀림으로 치부하는 배타적 자기동일성의 신화’이기 때문이다.

역사에 비교적 뚜렷한 자취를 남긴 선조인 15세기 유학자 남계 표연말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조상의 신화화를 경계한다.

“우리나라의 이른바 대유(大儒)들을 주제로 한 학문적 연구 성과의 상당수는 일종의 문중학(門中學), 나아가 ‘우리 조상 빛내기 쇼’에 지나지 않는다.” 표연말 같은 철저한 유학자가 있었는가 하면 임진왜란 중에 역관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사욕을 채운 표헌, 표정로 같은 보통사람도 있었음을 지은이는 담담히 서술한다.

책의 전반부는 지은이가 문자 기록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먼 조상들의 이야기다. 따라서 그들을 객관화, 상대화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후반부는 지은이 자신이 오감으로 겪은 두 사람, 할아버지 표문학과 아버지 표명렬의 역사다. 일부 현실로 겪기도 한 한국의 근현대사다. 객관화가 어려웠기 때문인지 지은이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 적듯이 기술했다. 표문학의 글을 그대로 싣기도 했다.

사회주의자이면서 광복 후 남로당원이기도 했지만 ‘생산력 발전’이 먼저라는 생각에 열성적인 새마을 운동가로 변신했던 표문학의 삶. 그것은 ‘삶의 준거가 되는 텍스트, 즉 경전’이 사라져버린 현대를 온몸으로 겪어낸 삶이었다. 그런 할아버지의 아들 표명렬은 육사를 나와 준장에까지 올랐지만 80년 5월 광주에서 군이 벌인 행동에 환멸을 느낀다.

지은이는 족보라는 집단의 역사에서 개인의 역사를 찾으려고 한다. 그것은 족보 속의 인물들을 철저히 객관화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그래서 그 역사적 존재들이 어떻게 지은이의 내면에 자연스럽게 남았는지 밝히고 있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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