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시민 발길막는 ‘잔디광장’

  • 입력 2004년 8월 27일 1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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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낮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광장 내 잔디밭 곳곳에는 노란 줄이 쳐져 있었다. 잔디가 누렇게 죽었거나 맨땅이 드러난 곳에 출입을 막기 위해 설치된 것.

개장한 지 이제 겨우 3개월 남짓. 서울시가 이미 수차례 새 잔디를 깔았지만 여린 잔디는 사람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시들어가고 있다. 서울광장에는 그동안 음악회, 축제 등이 50회 가까이 열리면서 수백만명의 시민이 몰려들었다. 잔디가 성할 리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서울시는 임시방편으로 매주 월요일을 ‘잔디 쉬는 날’로 정해 출입을 통제했다.

시 관계자는 “공놀이나 공연을 관람할 때는 잔디 옆 화강석 광장을 이용해달라는 내용의 만화를 제작해 잔디보호 캠페인을 벌일 계획”이라며 “하지만 광장 출입을 강제로 막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광장을 찾은 회사원 김경화씨는 “마음껏 잔디를 밟으라고 얘기할 때는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단 말이냐”며 “잔디가 대부분인 광장에서 잔디보호 운운하면 광장에 들어가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잔디가 서울광장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은 광장 조성 전부터 제기됐었다. 생명력이 가장 강하다는 축구장의 잔디도 한 번 경기를 갖고 나면 일주일 이상 쉬게 해줘야 하는데, 매일 수많은 시민이 찾는 광장의 잔디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서울광장은 교통 혼잡을 감수하면서 만든 시민의 자산이다. 우회로 중심으로 시청 주변의 교통을 바꾸면서 운전자들의 불편이 가중됐지만 시민들은 서울 한복판에 광장을 갖게 됐음을 기뻐하며 불편을 감수해 왔다.

그런데 제대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광장이라면, 결국 서울광장은 교통 혼잡만 유발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릴 수밖에 없다.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외국의 광장은 돌이나 콘크리트로 만들어졌고 누구나 자유롭게 쉬고 떠들 수 있는 공간”이라며 “차라리 나무를 심고 벤치를 설치해 도심의 푸른 휴식처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에게 광장을 돌려드린다. 마음껏 이용하시라”던 이명박 서울시장의 약속이 여전히 귓가에 생생하다. 서울시가 발상의 전환을 통해 그 약속을 지켜주길 고대한다.

황태훈 사회부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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