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새뮤얼 헌팅턴의 미국’…미국도 문명충돌

  • 입력 2004년 7월 30일 17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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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환호하는 민주당 지지자들. 새뮤얼 헌팅턴이 미국 정체성의 핵으로 규정한 앵글로색슨 계열의 백인을 포함해 다양한 인종이 눈에 띈다. 과연 이번 대선의 결과는 헌팅턴이 말한 미국 정체성의 강화로 갈 것인가, 아니면 다원주의를 강조해 온 미국의 또 다른 전통의 강화로 갈 것인가. -보스턴〓AP 연합
29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환호하는 민주당 지지자들. 새뮤얼 헌팅턴이 미국 정체성의 핵으로 규정한 앵글로색슨 계열의 백인을 포함해 다양한 인종이 눈에 띈다. 과연 이번 대선의 결과는 헌팅턴이 말한 미국 정체성의 강화로 갈 것인가, 아니면 다원주의를 강조해 온 미국의 또 다른 전통의 강화로 갈 것인가. -보스턴〓AP 연합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새뮤얼 헌팅턴 지음 형선호 옮김/527쪽 1만9900원 김영사

《하나의 언어-종교-신조 위에 세워진 미국. 그러나 지금 미국이 분열되고 있다. 폭풍의 핵은 히스패닉. 그들은 미국을 두개의 문화권으로 나누고 있다. 전통의 앵글로와 히스패닉의 문명충돌. 미국 정통보수주의자 헌팅턴의 눈에 비친 미국의 앞날은…》

탈냉전시대의 세계에서는 기독교문명과 이슬람문명의 운명적 충돌을 피할 수 없다는 정치적 예언으로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미국의 정치학자 헌팅턴(77). 그가 이번에는 지구적 스케일의 ‘문명충돌론’ 대신 소박하게도 ‘사랑하는 조국’의 붕괴 가능성을 우려하는 ‘미국 붕괴론’을 들고 나왔다.

우선, 미국이 지켜야 할 미국적 정체성에 대한 그의 견해부터가 그의 이름이 말해 주듯이 영국 혈통답다. 미국은 식민지 시대(1608∼1774)의 북아메리카에 영국인들이 이주해 세운 종교, 정치, 언어적 전통에 뿌리를 둔 나라로서 단연코 ‘앵글로 프로테스탄트’ 국가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은 잡다한 이민들이 만든 나라가 아니라 식민지 시대의 북아메리카에 정착한 영국인이 세운 나라이며, 후일 여타 백인종과 유색인이 미국민이 되었던 것은 이들이 미국의 도덕주의적 정치전통과 언어(영어)에 저항 없이 동화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6장까지는 미국 민족의식의 역사에 할애된다. 그러나 이 부분은 헌팅턴이 연주할 애국가의 서주에 불과하다.

간단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다양한 전거를 끌어 대는 헌팅턴 특유의 드리블에 가속도가 붙는 것은 7장부터. 일단 그의 시선은 히스패닉 문제로 집중된다. 쿠바인은 마이애미로, 도미니카인과 푸에르토리코인은 뉴욕으로 몰리는 현실, 그리고 2010년 로스앤젤레스 주민의 60%를 히스패닉이 점유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올 만큼 급증하는 멕시코인 이민 등에 대한 그의 경고는 대부분의 백인 미국인들을 섬뜩하게 만들 고단위 각성제로서 손색이 없다.

또 그는 19세기 중엽의 멕시코 전쟁을 통해 멕시코로부터 빼앗은 텍사스, 뉴멕시코, 애리조나, 캘리포니아주 등에 멕시코인 이민이 집중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한다. 그는 이를 미국 서남부에 대한 멕시코인의 영토 수복 운동으로 보고 이 지역의 멕시코 식민지화 가능성까지 우려한다.

특히 로스앤젤레스나 뉴욕, 마이애미처럼 대통령 선거인단의 수가 많은 큰 주의 대도시들이 연방정치 판세에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그의 도발적 분석은 전통적인 미국의 종말을 예언하는 ‘미국 묵시록’이나 마찬가지다.

지나친 소수인종 차별 철폐 정책과 스페인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병행하려는 이중 언어정책에 대한 그의 비판도 ‘미국을 붕괴시키는 데 앞장선 진보주의자’들에 대한 정치적 비판이며 항변이다.

리버럴한 엘리트들과 실제로 미국의 다수를 차지하는 보통 국민 사이에 존재하는 신념의 괴리를 그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면 미국 내에서 양 극단의 서평을 받고 있는 이 책을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사실 이 책을 읽다 보면 적국 독일로부터 미국을 지켜야 한다는 집단 강박증이 ‘100% 미국주의’라는 전대미문의 이데올로기로 표출됐던 제1차 세계대전 중의 미국, 또 기상천외의 금주법(禁酒法)까지 연방헌법에 추가할 만큼 도덕주의적 히스테리에 휩싸였던 1920년대의 일사불란한 미국을 동경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나 헌팅턴의 ‘미국 수호론’에 대한 정치적 동의 여부는 궁극적으로 미국 사회의 몫이다.

미국의 세계관보다는 미국의 외교정책이나 한미관계에만 관심을 집중해 온 우리에게는 오히려 이 책이야말로 평균적인 백인 미국 사회의 세계관을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미국인의 절반은 이라크 침공의 명분 상실에도 불구하고 올 11월의 미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을 여전히 테러라는 적을 응징할 선봉장으로 지지한다.

이런 맥락에서 문명충돌론에 이어 미국 수호론까지 ‘미국 대 타자(他者)’라는 대결적 패러다임을 제작하는 ‘미국 민족주의자 헌팅턴’을 발견해 낼 수 있다면, ‘타자’와 ‘적’을 먼저 상정하고 그 적과 반대되는 모습을 자기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미국 민족주의의 반사적 속성 또한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원제 ‘Who Are We?’(2004년).

권용립 경성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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