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석류’…작지만 기억해야 할 것들

  • 입력 2004년 6월 18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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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류/최일남 지음/301쪽 9000원 현대문학

“밥 먹고 헐 일 없으니께 그냥 쓰는 것이지. 그래도 사는 날까지는 계속 해야지.”

작가 최일남씨(72)의 쑥스러운 듯 웃음 섞인 목소리가 느릿한 말투에 실려 전화기 너머로 들려 왔다. 1년에 2, 3편씩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 온 그가 4년 만에 13번째 창작집 ‘석류’를 펴냈다. ‘석류’에는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번에 대폭 개정한 1997년 작 ‘아침에 웃다’를 제외하고는 모두 2001년 이후 작품이다.

대서소(명필 한덕봉), 무명옷(버선), 욕쟁이 할머니(아침에 웃다)처럼 이 책은 점차 잊혀져 가는 소소한 생활 문화에서 소재를 찾았다.

‘아침에 웃다’에서 욕쟁이 할머니가 퍼붓는 욕은 질펀하면서도 사려 깊다. “욕도 식전에 먹이면 안 돼야. 배불리 먹고 났을 때 해야지.” 그러나 이런 할마이의 욕설은 ‘오살 육시를 눈 하나 깜짝 않고 저지르는 사회’와 ‘고전적인 욕설은 쪽도 못쓸, 컴퓨터에 낭자한 기상천외한 새 욕설’들에 밀려나 설 자리를 빼앗겨 간다.

“먹는 거, 입는 거, 이런 것들을 다룬 우리 소설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았다”는 그는 자잘한 삶의 편린들을 통해 지금 우리의 삶과 사회를 반추한다.

“진정한 역사가는 서민의 술상에 오르는 잡담마저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더라. 한 시대의 삶을 거시적으로 짚어 내기 위해서는 술집 구석에서 과년한 딸의 혼사를 걱정하는 지아비의 모습까지 그릴 수 있어야 한댔어.”(멀리 가버렸네)

특유의 맛깔스러운 대사와 해학은 여전하다. 때때로 사전의 도움을 빌려야 할 만큼 낯설면서도 아름답고 구수한 우리말을 만나는 것도 그의 작품을 읽는 큰 재미 중 하나다. 하지만 그는 “99%는 사전에 있는 말인데 괜히 티내는 것처럼 보일까 염려된다”며 되레 걱정한다.

“말이라는 게 생겼을 때는 다 뭔가 제 값을 하자고 나온 것일 텐데. 그저 멍청한 늙은이가 그 말들을 챙겨 햇볕에 내어 준다고만 생각해 주면 좋겠는데….”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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